[재외한국학교 운영난] ② 절반이 '셋방살이'
무상교육서 배제, 예산 25% 지원받고 나머지는 수업료로 충당
교사급여 국내 70%…교육부 "무상교육 땐 비용부담 폭발적 증가"
(베이징·칭다오·오사카·도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해외에 거주해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당장 초·중학교 무상교육이 어렵다면 시설과 기자재 등 교육환경이라도 개선해주면 좋겠습니다."
중국 북경한국학교에서 만난 학부모 P 씨는 자녀를 초·중학교에 1명씩 보내고 있다. 연간 학비가 초등학교 2만8천 위안(380만 원), 중학교는 3만3천 위안(546만 원)이다.
무역업을 해서 비교적 형편이 괜찮은 P 씨 입장에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의 초·중학교가 무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교를 옮길까 생각도 해보지만 무상인 현지 학교에 보내자니 정체성 문제가 마음에 걸리고, 한 명당 연간 3천만 원의 학비가 드는 국제학교는 아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그는 푸념한다.
◇ "무상교육 해야" vs "과도한 혜택"
교육부는 관련법에 따라 한국학교의 설립 비용을 50%, 이후의 운영비는 25%를 지원한다.
학교 측은 나머지 75%를 입학금과 수업료로 조달하지만 교사 월급에다 임대료, 관리비 등으로 살림살이가 늘 빠듯하다.
한국학교들은 '초·중등교육법'에 무상교육의 시행 근거를 마련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상 교부 대상에도 한국학교를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재외국민도 엄연히 헌법에 규정된 국민이며 '교육권'을 규정한 헌법 31조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다.
이들은 국내외에서 학교에 기부금을 낼 경우 세제혜택을 주는 등 기부금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선 한국학교 학부모의 상당수가 현지 정부에 세금을 낸다는 점에서 무상교육이 과연 적절하냐는 인식이 있다.
국내 대학 진학 때 특례입학의 적용을 받는 상황에서 학비까지 면제한다면 지나친 특혜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의 예산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교육부가 2017년도에 한국학교에 지원하는 예산은 488억 원, 32개 한국학교의 연간 예산은 1천950억 원이다.
1만3천700여 명의 학생 중 67%가 초·중학생이므로 이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818억 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것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무상교육을 하면 현지 학교 등에 다니는 자녀들이 한국학교로 몰릴 것이므로 건물 증축, 교사 추가 채용 등으로 비용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선진 북경한국학교 교장은 "무상교육 예산이 부담이라면 우선 교육환경이 열악한 곳부터 점진적으로 지원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 운동장 좁고 강당은 없고…40%가 건물 임대해 사용
복도를 막아 급조한 교실, 학급당 학생 40명, 낡은 책걸상과 칠판, 비좁은 운동장, 강당이 없어 눈비가 오면 중단되는 체육 활동, 인근 호텔을 빌려야 열 수 있는 입학식과 졸업식…
32개 재외 한국학교 가운데 자체 건물이 없어 세 들어 사는 곳이 13곳(40%)이다.
한인들이 밀집한 지역은 주로 도심이다. 토지를 매입해 새 건물을 짓거나 기존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절반을 지원한다 해도 누군가 큰돈을 내놓지 않는다면 자체 건물을 갖기가 쉽지 않다.
한인사회의 기반이 비교적 견고한 중국 칭다오의 청운한국학교도 현지 학교 건물을 일부 임대해 사용한다.
김영춘 교장은 "한국 기업이 많이 몰려들어 경기가 좋았을 때 학교를 지었어야 했는데 때를 놓쳤다"며 "기업들이 많이 떠난 지금은 건축기금을 모으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셋방살이로 인한 불편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빌린 건물이라 마음대로 고치지도 못하고 체육관이 없어 행사를 식당에서 치르는 형편"이라며 "건물과 건물 사이 통로 위에 임시지붕을 만들어 행사를 열기도 하지만 건축법상 불법이라 늘 신경이 쓰인다"고 호소했다.
시설이 비좁아 어려움을 겪던 북경한국학교는 지난 2011년 근처 건물을 융자로 매입했다.
조선진 교장은 "학비의 일부를 아껴서 대출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재정이 어렵다"며 "내 건물이라서 눈치 안 보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고 말했다.
◇ 초빙교사들 "경력 인정, 처우 개선 희망"
한국학교 교원 1천300여 명 중 교장 등 파견교사 110명, 원어민 교사와 현지 채용 교원 390명을 제외한 나머지 800명 정도는 국내 학교에서 휴직 후 현지에 부임한 초빙교사다.
파견교사는 국내 급여와 체류비를 받고 경력도 인정되지만 초빙교사 급여는 국내의 70% 수준이고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다.
초빙교사들은 인재 양성의 사명감 등 다양한 이유로 자원해 나갔지만 파견교사와의 차별이나 열악한 교육환경에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한 초빙교사는 "정규학교에서 똑같이 가르치고 있음에도 처우나 경력 문제에서 뒤처지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한국학교 교사와 학생을 마치 2등 시민으로 보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파견이나 초빙교사 중에는 5년 이상의 장기 근속자가 거의 없다. 교육부가 5년 주기로 개편하는 새로운 교과과정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재직 기간을 5년으로 권장하고 있고 일부 지방교육청은 휴직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성이나 교육의 연속성 측면에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학교의 대부분은 교사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전임교원의 비중이 본국 학교에 미치지 못한다. 동경한국학교는 중등부 교원의 40%가 강사 신분이다. 그러다 보니 전임교원이 2∼3개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고 최대 11과목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교육부가 모든 교원을 파견교사로 채우지 못하는 것도 예산 문제 때문이다.
이훈우 동경한국학교 초등부 교감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해외근무를 하는 이유에 대해 "학생들이 순수하고 행정업무도 상대적으로 적어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다. 교육자로서 가르치는 보람이 큰 것만 한 보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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