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증세 여론전 '네이밍 싸움'…프레임 경쟁 치열

입력 2017-07-24 11:52
수정 2017-07-24 16:39
여야, 증세 여론전 '네이밍 싸움'…프레임 경쟁 치열

與 '핀셋·슈퍼리치 증세', '명예·사랑·존경 과세'로 저항 차단

野 '세금 폭탄', '징벌적 증세', '청개구리 정책' 맹공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이슬기 =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증세 방안을 두고 24일 여야의 여론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세금을 누구에게 더 많이 걷고 어떤 효과를 거둘지를 한 마디로 축약한 '네이밍'(이름짓기)이 초반 여론전의 핵심 승부처다.

여당은 광범위한 국민의 조세 저항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일반 서민에게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핀셋증세'라는 점을 내세운다. 반면, 야권은 이와 정반대로 일부 기업과 개인에 과도한 부담을 떠넘기는 '징벌적 증세'라고 맞서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추미애 대표가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 2천억 원 초과 대기업과 소득 5억 원 초과 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각각 높이자고 제안할 때부터 그 대상이 '초'(超) 대기업과 고소득자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은 이번 증세 대상을 한데 묶어 '슈퍼리치'로 호칭, 여론 대다수를 이루는 국민과 사실상 분리하는 전략을 폈다. 과세 표준 2천억 원을 넘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0.019%, 5억 원을 넘는 개인은 전체 국민의 0.08%라고 설명했다.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지난 23일 '불평등 심화를 개선하는 슈퍼리치 증세'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일반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증세가 전혀 없다"면서 "우리 당은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세율 인상에 방점을 찍어 '핀셋증세'라는 말로 시작된 여당의 네이밍은 이날 '슈퍼리치 증세'를 넘어 '명예과세', '사랑과세', '존경과세' 등으로 파생됐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조세 정의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스스로 명예를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명예과세'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최고위원회의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초우량기업이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랑과세', 부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존경과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여당 지도부의 발언에선 세금을 올린다는 '증세'라는 단어를 세금을 부과한다는 '과세'로 바꾼 것이 눈에 띄었다. 일반 국민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밀한 대응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이 이처럼 이름짓기에 공을 들이는 것은 과거 수차례 누적된 학습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쟁점 법안을 'MB 악법'으로 규정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휴대전화 도청법'으로, 집시법 개정안을 '마스크 처벌법'으로 각각 불러 부정적 여론을 배가했다.

민주당은 반대로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시장 안정과 소득 재분배를 명분으로 시행한 종합부동산세 인상 정책이 '세금 폭탄' 프레임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일단 민주당의 선제적인 네이밍 전략은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는 데 어느 정도 보탬이 된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는 지난 21일 전국 성인 남녀 50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6%가 정부의 증세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이날 밝혔다. '반대한다'는 10.0%에 그쳤다.

이에 반해 야권은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증세를 '세금 폭탄'이라고 칭하면서 증세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날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정부의 증세 추진을 두고 '세금 폭탄', '징벌적 증세', '짜고 치는 고스톱' 등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가공할 세금 폭탄 정책에 대해서 관계 장관이 말 한마디 못하고 벙어리 행세를 하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 집중'과의 인터뷰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낮추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며 '청개구리 정책'이라고 비꼬았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이 이윤을 많이 내는 것이 마치 잘못한 짓을 한 것으로 보고 벌을 주는 것처럼 '징벌적 증세'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김 최고위원은 정부가 일부 초고소득자에만 한정해 증세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계층갈등을 조장하는 '갈라치기 수법'이라며 맹비난했다.

바른정당은 대선 선거운동 때부터 강조해온 '중부담·중복지'를 강조하면서 국민이 선택하는 복지 수준에 맞는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원론을 주장했다.

이혜훈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께 양해를 얻어 복지 수준을 결정하고 나면 재정부담 수준은 자동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바른정당은 대선 기간 중복지 중부담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핀셋증세', '슈퍼리치 증세', '대한민국 1% 증세' 등 여권에서 개발한 증세 용어들이 증세의 위험성을 감춘 채 국민 여론을 호도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당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법인세를 인하하는 세계적 흐름과도 동떨어졌을 뿐 아니라 포퓰리즘에 입각한 용어를 개발해서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반대로 정의당은 초고소득 증세의 폭이 지나치게 작다고 오히려 비판하고 나섰다.

이정미 대표는 이날 상무위 회의에서 "규모가 3조∼4조 원에 불과하고, 세목과 대상자도 극히 일부로 제한하고 있어 '부실증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과세 정책을 둘러싼 여야의 프레임 전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정부의 증세,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라며 "부자증세? 대한민국 1% 증세? 알맞은 이름을 붙여주세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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