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회복" 외치며 폴란드 역사에 재등장한 바웬사
심장병 투병에도 연단에 나서 집권당 사법부 장악시도 비판
'제2의 민주화 물결'…대통령 거부권 촉구 주요도시 촛불함성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폴란드 집권여당이 추진 중인 사법부 무력화 법안들이 잇따라 의회를 통과하면서 한때 '동유럽 민주화의 모범'으로 불렸던 폴란드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에 '폴란드 민주화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레흐 바웬사(74)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수호 움직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하면서 폴란드에선 제2의 민주화 바람이 불 조짐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바웬사 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폴란드 항구도시 그단스크에서 열린 민주주의 수호 시위에 작업복 차림을 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심장병으로 투병 중인 그는 이날 연단에 올라 "우리 세대는 폴란드를 (민주주의)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고, 권력 분립도 쟁취했다. 이를 파괴하는 것을 절대 좌시할 수 없다"며 여당의 사법부 장악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폴란드에선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집권여당 '법과정의당(PiS)'이 정부·의회가 각급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도록 하는 법안을 잇따라 통과시키며 사법부 장악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폴란드와 유럽 각국에서 대대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폴란드 민주주의 정착을 이끌었던 바웬사 전 대통령이 이를 보다 못해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군중 앞에 나선 것이다.
그는 "1989년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민주적인 폴란드를 선사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되찾아야 한다"며 민주주의 사수를 위한 투쟁을 지원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바웬사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자유노조 운동을 이끌어 바르샤바의 봄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는 공산주의에 맞서 동유럽 최초의 합법노조인 자유노조를 설립해 폴란드 민주화를 이끈 공로로 198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또 1989년 공산주의 붕괴 후 1990년 폴란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집권 당시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이에 폴란드는 동유럽 민주화의 모범국으로 전 세계에 각인됐다.
외신들은 바웬사가 이날 연설에 나선 장소가 그가 자유노조를 조직해 민주화 투쟁을 시작한 그단스크라는 점을 강조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집권여당의 사법부 장악 시도에 유럽연합(EU) 등은 폴란드가 1989년 민주화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독일,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도 항의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EU는 폴란드의 표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리스본조약 제7조를 발동하는 제재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또 법안들에 대한 최종 서명 권한을 가진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PiS가 사법부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수정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집권당의 행보에 반발하는 시위대, EU 주요국들은 두다 대통령이 보루가 돼주기를 바라고 있다.
시위는 바웬사 대통령이 연단에 오른 그단스크뿐만 아니라 바르샤바, 브로츠와프, 크라쿠프 등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열렸다.
하지만 폴란드와 함께 권위주의 정권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헝가리는 오히려 폴란드 편을 들고 나섰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법치훼손 실태를 조사하는 EU가 폴란드를 상대로 심문을 하고 있다며 EU가 제재를 논의할 때 적극적으로 방어에 가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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