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마당 모기장서 쪽잠…방에선 퀴퀴한 냄새 진동"(종합)

입력 2017-07-25 16:11
수정 2017-07-25 16:13
"처마 밑 마당 모기장서 쪽잠…방에선 퀴퀴한 냄새 진동"(종합)

'모기떼 극성에 잠 못 이뤄…비닐하우스 빨래 건조장 변신

폭우로 집 물에 잠긴 괴산 주민들 "이런 난리 난생 처음"

(괴산=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난리도 이런 난리는 처음 겪습니다…밤엔 '윙윙'거리는 모기떼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어요"

지난 16일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신도원2구 중리마을 주민 임모(84) 할머니는 한동안 비가 들이치지 않는 처마 밑 마당에 휴대용 매트를 깐 뒤 모기장을 치고 잠을 청했다.



물이 찼던 방이 마르지 않아 장판도 못 깔고 도배도 못 했기 때문이다. 방에 있어야 할 TV도 마당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구호물품으로 나온 이불을 덮고 잔다.

자원봉사자들이 폭우로 집 앞마당에 처박혀 있던 평상(平床)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임 할머니는 한동안 평상에서 자지 않았다. 잠을 자다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할머니는 "수해가 난 뒤 마을의 교회에 딸린 방 3곳에서 주민 40여명과 함께 닷새 정도 잤는데 거기까지 가기도 힘들고 자원봉사자들이 집을 어느 정도 정리해줘서 한동안 마당에서 잤다"고 말했다.



임 할머니는 "지난 23일 저녁때는 비가 마구 쏟아지는 바람에 처마 밑 침상에서 잤는데 그나마 이불이 젖어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지금은 방과 방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공간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방문 요양 보호사가 모기장을 옮겨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바닥이 눅눅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없다. 모기장 바닥엔 휴대용 매트만 깔렸다.

임 할머니 집에서 교회까지는 불과 100여m 떨어져 있지만, 임 할머니는 유모차에 의지해야만 나들이를 할 수 있을 만큼 몸이 좋지 않다고 강경식(65·여) 이장은 귀띔했다.



임 할머니는 주민들이 함께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마을회관을 갈 때도 꼭 복대를 찬다. 주위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만 겨우 마당에서 방에 올라갈 정도다.



마을에서 20년가량 향토음식점을 운영해 온 김모(66·여)씨도 식당 홀에서 밤을 보낸다.

김씨의 임시 안방 격인 식당 홀에 있는 물건이라곤 바닥에 깔린 은박지 스티로폼과 얇은 이불, 베개가 전부다.

"방 중간 높이까지 물이 차는 바람에 세간살이 대부분이 못 쓰게 됐어요. 식당에 있던 물건들은 물에 다 떠내려갔어요"

김씨도 식당과 집이 모두 침수되는 바람에 한동안 교회 방 신세를 졌다.

물이 빠지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닷새 전부터 식당 홀에서 지내고 있다.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임 할머니와 김씨처럼 불편하게 잠을 청하는 주민이 부지기수라고 강 이장은 말했다.

주민들이 물이 빠졌지만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할 수 없는 것은 냄새 때문이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이다.

강 이장는 "냄새 때문에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 툇마루 등에서 자는 주민들도 있다"며 주민들이 겪는 고충을 전했다.

그러면서 "마을 곳곳의 수세식 화장실에도 물이 찼었는데 빨리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이 말라야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할 수 있는 데 사정이 녹록지 않다.

보일러가 고장 난 데다 계속 비가 와 습도도 높기 때문이다. 선풍기를 쉴새 없이 돌리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강 이장은 "주민들이 지하수 물을 이용해 씻고 있는데 보일러가 고장 나 따뜻한 물은 구경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마을 앞 비닐하우스는 거대한 빨래 건조장으로 변했다.



워낙 큰 피해를 봐 빨래를 널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다.

물난리를 겪었지만, 물이 부족한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빗물을 받아 손으로 대충 빨아 빨래를 널고 있다. 세탁기는 물론 크고 작은 가전제품이 많이 떠내려가서다.



먹는 것도 영 신통치 않다.

주민들은 수마가 할퀴고 난 이후 마을 회관 앞 정자에서 함께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는다. 오전 6시, 낮 12시, 오후 6시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시고 식사하러 오세요'란 내용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집에서 밥을 지을 수가 없어서다.

군에서 나눠 준 김치와 주민들이 끓인 국으로 허기를 때우기 일쑤다.



음식점이나 봉사단체에서 반찬거리 등을 보내줄 때는 그나마 나은 밥상이 차려진다.

한 마을 주민은 "구호물품을 받는 날에는 그나마 반찬 가짓수가 몇 개 된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말 그대로 22가구 주민들이 멀쩡했던 집을 놔두고 풍찬노숙하는 신세가 됐다.

폭우로 마을 앞을 흐르는 달천이 범람하면서 마을의 저지대 22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게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함께 식사할 때는 농담도 건네며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주거나 용기를 북돋워 준다.

이장 강 씨는 "침수됐던 방이 빨리 말라야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하는 데, 비가 또 내린다고 하니 하늘도 무심하다"면서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부족하지만 빨리 복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y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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