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영화감독 파솔리니 피살사건 영구미제 되나…살해범 사망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겸 작가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석연찮은 죽음이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21일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이탈리아 언론은 파솔리니의 살해범인 피노 펠로시가 암투병 도중 사망한 소식을 전하며 42년 전 일어난 파솔리니 살해 사건을 재조명했다. 펠로시는 지난 19일 로마의 한 병원에서 58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파솔리니는 가톨릭 교회와 파시즘을 강도높게 비난하며 지배 체제에 대한 저항과 일탈을 담은 논쟁적인 영화와 소설, 시, 비평문을 다수 선보이며 이탈리아 문화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논쟁적 작품인 '살로, 소돔의 120일'을 완성한 직후인 1975년 11월2일 로마 근교의 오스티아 해안에서 살해돼 이탈리아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경찰은 범인이 당시 17세이던 동성애 상대자 펠로시라고 발표했고, 자신의 손으로 파솔리니를 죽였다고 자백한 펠로시는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돼 형을 살다가 1983년 가석방됐다.
원심 법정은 당초 범행이 단독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봤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공모자는 없다고 판결했다.
펠로시는 그러나 몇 년 후 자신이 파솔리니를 죽인 범인이 아니라며 자백을 번복했고, 이때부터 파솔리니가 그의 급진적 사상과 작품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에 의해 제거된 것이라는 음모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2005년 펠로시가 "파솔리니에게 '교훈을 주고자 한다"고 말한 3명의 폭력배들의 구타로 페솔리니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말한 직후 이탈리아 사법당국은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으나 몇 달 뒤 새로운 증거가 없다며 조사를 중단했다.
펠로시는 당시 "이제 나의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 파솔리니를 실제로 죽인 진범에게 보복 당할 염려가 없어졌다"며 "진실을 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0년에는 파솔리니의 추종자들이 사법 당국이 이전에 입수하지 못한 DNA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것을 촉구함에 따라 수사가 재개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파솔리니 유족의 변호인 니노 마라치타는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펠로시는 주범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채 결국 비밀을 무덤 속으로 가져갔다"며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범인은 지금도 아마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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