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소유 SCMP, 시진핑 눈치보나…中권력 '부패'칼럼 돌연 삭제
빈과일보 "시진핑 측근 리잔수 주임 딸 홍콩 부동산 소유 추정"
(홍콩=연합뉴스) 최현석 특파원 = 홍콩 정론지로 명성을 떨쳐온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중국 권력의 눈치를 살핀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마윈(馬雲·잭마) 중국 알리바바 그룹 회장 소유로 바뀌면서, 과거와는 달리 중국 권력층의 비위 맞추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SCMP가 19일 지면에 실은 셜리 얌(任美貞) 칼럼니스트의 글을 돌연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걸 계기로 논란이 불거졌다.
얌 칼럼니스트는 당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오른팔이라고 할 리잔수(栗戰書)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의 딸 리첸신(栗潛心)과 같은 이름의 여성이 홍콩 페닌슐라 호텔 지주회사의 투자자인 싱가포르 사업가 추아화포(蔡華波·32)가 소유한 홍콩 주택에 주소를 두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그러면서 추아화포의 저장(浙江)성 방언 억양이 싱가포르 출신과 다르며, 추아화포가 리 주임과 연계된 중국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다시 말해 둘 관계가 공동 투자자일 수 있으며, 그런 점에 비춰볼 때 결국 리잔수 주임이 그 배경에 있다는 점을 암시함으로써, 리 주임의 부정부패 연루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SCMP는 20일 해당 칼럼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그러면서 사과문을 게재했다.
SCMP는 해당 칼럼이 여러가지 증명할 수 없는 암시를 포함해 출판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으며, 그런 유감스러운 실수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논란이 되는 주제를 피하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이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진 깊이 있는 기사를 제공해왔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의 이런 해명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얌 칼럼니스트의 칼럼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하면서도 정론을 지켜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SCMP 밖의 분위기는 다르다.
우선 야권 성향의 홍콩 빈과일보는 21일 추아화포가 리첸신과 이름이 같은 여성과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빈과일보는 추아화포와 리첸신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함께 사는 집이 주홍콩 중국연락판공실의 전신인 신화사(新華社)가 귀빈을 접대하던 건물이라며 리첸신이 그 중 일부를 1억1천700만 홍콩달러(약 168억 원)에 사들였다고 얌 칼럼니스트의 애초 칼럼보다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빈과일보는 이어 리잔수 주임이 홍콩의 행정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리 주임이 홍콩 당국자들에게 지난달 말 시진핑 주석의 홍콩 방문 때 공항 내 레드카펫이 짧았고 강단에 생화가 없었던 '부실한' 의전에 대해 상당히 화를 냈다고 빈과일보는 소개했다.
SCMP가 리잔수 주임의 부정부패 연루 가능성을 제기했다가 바로 덮은 상황에서 빈과일보가 다시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홍콩에선 SCMP가 빈과일보와 달리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SCMP가 2015년 말 중국 권력층과 밀접한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에게 인수됐을 때부터 중국 눈치 보기가 예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지도부의 대거 개편이 이뤄질 올가을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를 앞두고 SCMP가 중국 권력층 비위 맞추기에 나섰다는 관측도 있다.
SCMP는 작년 6월 변호사나 남편조차 접촉하지 못한 채 구금된 중국 인권활동가 자오웨이(趙威·여)의 친(親) 중국 권력층 성향 인터뷰를 실으면서 관영매체 성향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자오웨이는 잘못된 길을 택했다는 것을 깨달아 자신이 한 일을 뉘우쳤고 새로운 사람이 됐다는 식의 자기부정 주장을 하고 나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관영매체에서나 나올만한 논조의 인터뷰 기사가 기자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나오자 SCMP가 변절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브루스 루이(呂秉權) 홍콩 뱁티스트(浸會)대 선임강사는 얌 칼럼니스트의 글이 합리적이었으나, 시 주석 심복인 리 주임과 관련돼 민감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면서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SCMP에서 그와 유사한 칼럼 삭제 사건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미 탐(譚衛兒·여) SCMP 편집장은 칼럼 삭제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은 채 얌 칼럼니스트가 계속 칼럼을 게재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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