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원인은 남의 돈으로 딴짓하는 금융권 문화와 행태"
신간 '금융의 딴짓'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존 케이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런던정경대 석좌교수는 그동안 나온 대책들만으로는 금융위기의 근원적 요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며 대규모 금융위기가 다시 도래할 수 있고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신간 '금융의 딴짓'(인터워크솔루션 펴냄)에서 금융위기의 근원적 요인이 금융이 원래 할 일은 하지 않고 남의 돈을 가지고 딴짓을 하면서 높은 수익과 급여를 가져가는 금융권의 행태와 문화라고 지적한다.
금융의 원래 할 일은 무엇인가. 저자는 결제를 쉽게 해주고 대출기관과 차입자를 연결해주며 재무상태와 위험을 관리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금융의 성공 여부는 이런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느냐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은 본래 목표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으며 금융위기도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문제의 해법은 금융이 원래의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이다.
금융개혁의 첫째 원칙은 금융의 중개 고리가 짧고 간단하며 직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저축하는 사람과 이들의 자금을 사용하는 사람 사이 연결은 너무 적고 약한 반면 중개기관 간 거래는 너무 복잡하다. 금융이 복잡해진 것은 금융서비스 사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개인들의 이익을 위한 측면이 많다. 중개회사들은 불필요한 상품을 무계획하게 쏟아냈다. 리먼브러더스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을 키우고 금융 중개비용을 지나치게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결책은 이것저것 다 하는 투자은행의 사업모델에 종지부를 찍고 예금과 투자, 자산운용 채널을 분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은 남의 돈을 만지는 일인 만큼 종사자들은 성실함과 신중함,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부과하되 기업보다 개인에 책임을 지워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내놓은 규제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여러 규제가 나왔지만, 금융위기를 불러온 본질적인 금융의 구조와 일부 금융인의 행동에는 거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규제 강화가 능사는 아니다. 금융 규제는 부족한 게 아니라 지금도 너무 많다. 또 규제만으로는 다른 사람의 돈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성실함과 신중함의 문화를 키울 수 없다. 너무 많고 세세한 규제는 오히려 윤리 기준을 약화할 수도 있다.
책은 금융위기 당시 처벌받은 개인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 외에 개인에도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인의 돈을 관리하는 일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책임 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되면 책임자가 겉치레가 아닌 실제 엄격하게 내부를 감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금융이) 다시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할 시간"이라며 "그 일은 신중함과 책임감을 느끼고 타인의 돈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제 '타인의 돈'(Other People's Money). 류영재 옮김. 524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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