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가장 '핫'한 프로듀서 '그룹 이름'은? "그루비룸이에요"
박규정·이휘민으로 구성…개리·도끼부터 효린·헤이즈까지 함께 작업
24일 미니앨범…"음악·마인드 멋진 박재범이 워너비…작곡계 아이콘 꿈꾸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이거 누구 비트야?" "그루비룸(그룹 이름)이요."
지난해 3월 공개된 래퍼 오왼 오바도즈의 '시티'(City) 도입부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흐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루비룸(박규정 23, 이휘민 23)은 힙합 뮤지션들 사이에서만 입소문을 탄 프로듀서 듀오였다.
그러나 1년여가 흐른 지금, 이들은 업계에서 가장 '핫'한 팀으로 위상이 변화했다.
지난 2015년 9월 개리의 '바람이나 좀 쐐'로 주목받더니 올해 4월 효린과 창모의 듀엣곡 '블루문', 지난달 1위를 휩쓴 헤이즈의 '널 너무 모르고' 등을 통해 차트 지분을 넓혀나갔다. 이달 YG엔터테인먼트에서 14년 만에 선보인 솔로 가수 원의 '해야 해'도 이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주류와 인디를 막론한 뮤지션들이 그루비룸의 곡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작곡팀이지만 아이돌 같은 외모에 패션 감각도 갖춰 화보도 찍곤 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그루비룸의 박규정과 이휘민을 만났다.
앳된 얼굴의 두 청년은 "2013년 말부터 데모곡을 엄청 뿌렸다"며 "2014년부터 래퍼 형들을 한 명씩 알게 되면서 '얘네 잘한다'고 칭찬받으며 네트워크가 쌓였다. DJ펌킨에게서 개리, 개코 형을 잇달아 소개받아 우리 음악을 들려주자 연결 고리가 계속 생겨났다. 그 덕에 2015년부터 우리 곡들이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포항 출신인 박규정과 인천 출신인 이휘민이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1월 한 기획사에서다. 이들이 인터넷에 올린 음악과 영상을 보고 기획사가 연락해왔다. 1년간 친하게 지낸 두 사람은 작곡팀을 만들었고 가수로 키우려는 회사와 방향이 맞지 않자 독립했다.
그루비룸이란 팀명은 "우리 그룹 이름 뭐로 하지"란 이휘민의 물음에 "발음 나는 대로 그루비룸 어때"라는 박규정의 아이디어로 정해졌다. 여기에 녹음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그루브가 있는 방'이란 뜻을 더했다.
지금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작업실이 있지만 둘은 처음 내방역 인근의 한 건물 지하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월세 30만 원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습기에 옷이 젖을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작곡 데뷔는 2015년 래퍼 올티의 '졸업' 앨범에 참여하면서다. 이후 다이나믹듀오, 박재범, 도끼, 더블케이, 매드클라운, 스윙스, 치타 등 내로라하는 래퍼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박규정은 개리의 '바람이나 좀 쐐'와 박재범의 '사실은', 다이나믹듀오의 '요즘 어때?'를 꼽으며 "저작권료로 살게 된 것은 작년 4월부터로 지금 마인드는 20대에는 저작권료 생각하지 말고 멋있는 커리어를 쌓자는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이들의 강점은 힙합에서 파생된 장르인 트랩과 붐뱁을 비롯해 EDM 계열의 팝, R&B 등 트렌디하고 세련된 트랙을 만든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중성까지 겸비해 금상첨화다.
개그 코드까지 맞아 밤새 수다를 떤다는 둘의 작업 방식은 여느 프로듀싱팀과 달리 마치 한몸처럼 작업해 독특하다. 이들은 컴퓨터 한 대를 두고 이어달리기를 하듯 바통 터치를 하며 작업한다.
박규정은 "내가 컴퓨터로 작업하면 휘민이는 게임을 하든지 나가 놀든지 신경을 안 쓴다"며 "내가 작업을 그만두면 휘민이가 이어서 작업한다. 서로의 실험과 시도에 믿음을 가지니 새로운 결과물이 나온다. 서로 간섭하면 '안전빵'인 음악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휘민도 "서로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겠지'라는 신뢰가 있다"며 "물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의견을 나누지만, 한 명이라도 확신이 있으면 밀고 나간다"고 덧붙였다.
가장 뿌듯한 결과물로는 '블루문'을 꼽았다. 효린이 그간 선보이지 않은 음악 스타일로 창법도 새롭게 들렸다.
"'블루문'은 사실 우리 앨범 타이틀곡으로 생각했다가 건넨 곡이에요. 우리를 통해 새로운 색깔을 보여주길 원했어요. 예전엔 '이 가수가 우리 곡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면, 요즘에는 우리 브랜드가 조금 알려져 가수를 새롭게 해석해보려는 시도를 하죠. 작업해보고 싶은 가수들은 무척 많은데 학창 시절 음악을 즐겨 들은 지드래곤, 태연, 태양 등의 가수들과 함께 해보고 싶어요."
두 사람은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음악이 좋아서 미디(MIDI) 프로그램을 독학하며 이 길을 택한 공통분모가 있다.
이휘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더블케이 형의 앨범을 듣고 힙합에 빠졌다"며 "굳이 내 길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고교 3학년 때 모의고사를 보고서 내 인생이 망할 것 같았다. 그즈음 투애니원TV를 통해 테디 형을 보며 '나도 음악 좋아했는데'란 생각이 들었고 미디 프로그램을 독학하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고려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재학 중인 박규정은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접한 뒤 초등학교 때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받으며 중학교 때까지 취미로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중3 때부터 가요를 들으면서 MR(Music Recorded·반주 트랙)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큐베이스 등 작곡 소프트웨어를 독학하며 고교 때는 아예 학교 자습이 끝나면 새벽 3~4시까지 곡 만드는데 꽂혔죠. 부모님이 음악 하려면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해서 수능 보고서 본격적으로 나섰죠."(박규정)
지난해 12월 자신들의 첫 싱글 '로열티'(Loyalty)를 발표한 이들은 24일 7곡이 수록된 미니앨범 '에브리웨어'(Everywhere)을 발표한다.
이휘민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앨범의 분위기를 통일하고 싶지 않았다"며 "트랩, 붐뱁, 팝, R&B 등 여러 장르가 담겼고 다양한 아티스트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우리의 명함 같은 앨범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 방향에 대해서도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
둘은 "가수는 색깔이 있어야 메리트가 있지만 프로듀서는 색깔이 강하면 특정 장르가 유행할 때만 반짝했다가 수명을 다한다"며 "미국에서도 유명 힙합, EDM 프로듀서들이 '핫'했다가 사라졌다. 우린 항상 '프레시'(Fresh)하고 싶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목표를 묻자 "미래 모습을 많이 상상해보는데, 매년 다른 방향으로 생각보다 더 잘 돼 있었다"며 "예상외로 새로운 일이 생기고 잘 풀렸다. 지금처럼 재미있는 일이 계속 생겼으면 좋겠고 작곡가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아이콘이 되고 싶다"고 웃었다.
또 여러 기획사의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박재범이 설립한 레이블인 하이어뮤직에 합류한 이유도 설명했다.
"재범이 형이 하이어뮤직을 만들 때까지 다른 제안을 거절하고 기다렸어요. 형은 사람이 멋있고 믿음직스럽죠. 음악도, 마인드도 멋있고요. 틀을 깨려고 계속 진화하는 모습도 좋아요. 그런 모습이 저희에게도 원동력이 돼 '박재범처럼 살자'가 좌우명처럼 됐죠. 뭔가를 결정할 때도 '재범이 형이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면 바로 해결되죠. 하하."(박규정, 이휘민)
mim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