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노숙자 명의 유령법인 세워 대포통장 유통한 조직 적발
16명 구속·14명 불구속 기소…총책, 5년간 7억원 챙겨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노숙자 명의로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법인 명의 대포통장을 만들어 유통한 조직 30여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이용일 부장검사)는 2012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노숙자 47명 명의로 유령법인 119개를 세운 뒤 법인 명의 대포통장 1천31개를 만들어 유통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로 총책 손모(48)씨 등 16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19일 밝혔다.
또 범행에 가담한 노숙자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노숙자 관리책 1명은 기소중지 처분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총책 손씨를 주축으로 노숙자 모집책 및 관리책, 대포통장 유통 알선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움직였다.
손씨는 최근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유통을 막고자 개인 명의 계좌의 개설 요건을 강화하자, 통장 다수를 개설할 수 있고 이체 금액이 큰 법인 명의 대포통장을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인 명의자로는 약간의 돈만 제공하면 요구 사항을 잘 들어준다는 점에서 노숙자를 골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양모(62·구속)씨 등 노숙자 모집책들은 서울역 등의 노숙자들에게 돈과 숙식을 제공하겠다며 접근했다.
총책은 모집책이 알려준 노숙자의 주민등록번호로 신용상태를 파악해 사업자 설립이 가능한 노숙자만 골라 넘겨받았다. 모집책은 이렇게 넘긴 노숙자 1명당 80만∼12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들은 노숙자들을 원룸에 합숙시켰고, 양복을 사서 입혀 사업체 운영자처럼 가장한 후 등록 절차 등을 거쳐 유령법인을 설립했다. 법인 1개를 설립하면 노숙자에게는 100만원을 지급했다.
검찰은 이들이 2009년 상법 개정으로 자본금 100원만 있어도 주식회사 설립이 가능하고,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법인설립 신청이 가능해지는 등 법인설립이 쉬워진 점을 이용했다고 파악했다.
손씨는 노숙자 1명당 2∼3개의 유령법인을 세웠고, 법인 명의로 수개의 대포통장을 개설했다. 그는 대포통장 1개당 50만∼150만원을 받고 유통 알선책에 넘겼고, 통장 1개당 매달 140만원의 수익금을 받아 챙겼다.
손씨가 약 5년 동안 챙긴 수익은 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범죄수익금을 전부 추징할 방침이다.
앞서 2013년,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손씨가 데리고 있던 노숙자 관리책 등 22명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지만, 당시 손씨 등의 인적사항이 확인되지 않아 처벌은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손씨가 넘긴 대포통장은 베트남, 필리핀 등으로 보내져 보이스피싱이나 인터넷 도박 범죄에 이용됐다"면서 "대포통장 유통 사범에는 계속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 법인설립 및 사업자등록 단계의 허점 보완 등을 강조하는 한편 "대포통장 유통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는 경우가 형법상 범죄단체의 대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정형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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