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법 반대" 외친 日 '105세 현역 의사' 별세(종합)
'新 나이드는 방식' 제안 히노하라, 한국인 테너 후원자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100세를 넘어서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반대 목소리를 낸 일본 의료계의 산증인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성(聖)루카병원 명예원장이 18일 숨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고인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저술과 강연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친 인물이다. 대사증후군에 '생활습관병'이라는 이름을 붙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환자 중심 의료'를 주창해 의료계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고인은 특히 일본 사회에 '새로운 나이 드는 방식'을 제안해 실천한 인물로 유명하다.
89살이던 2000년에는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모아 '신(新)노인의 모임'을 창설해 고령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호소했으며, 이듬해에는 베스트셀러 '사는 방식 능숙함'(生き方上手)을 펴내 화제가 됐다. 이 책은 120만 부 이상이나 팔렸다.
사람들에게 "평생 현역"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스스로의 말처럼 최근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그는 95세이던 2007년 "야구로 치면 인생은 9회부터다.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인생이 시작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하철 사린 사건 당시에는 자신이 근무하던 성루카병원에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1970년 민간항공기 '요도호' 납치사건의 인질이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일본 공산주의 과격단체 적군파(赤軍派) 조직원들이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한 이 사건 당시 그는 이 비행기에 타고 있다가 김포공항에서 풀려났다.
히노하라 명예원장은 목소리를 잃었다가 수술을 받고 재기한 한국인 테너 배재철 씨의 팬이자 후원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배씨의 노래에 매료된 뒤 공연에 동행하며 적극 후원을 펼쳤다.
말년까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2015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안보관련법제를 제정해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변신시키려는 시도를 굵직한 목소리로 꾸짖기도 했다.
당시 '안전보장관련법안에 반대하는 의료·개호·복지관계자의 모임'이 발표한 성명에 참여하며 "인명의 중요성을 의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의사야말로 평화의 최전선에 서서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고인은 "노인에게는 전쟁 중의 체험을 전달할 사명이 있다"고 말하며 젊은이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에도 정열을 쏟았다.
태평양전쟁 말기 도쿄 대공습을 겪은 그는 지난 2009년 한 행사에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독한 전쟁이었다. 지옥이었다.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2세였던 2014년에는 헌법기념일에 '10대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헌법의 책'을 간행해 "자위대가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했고그 즈음 언론 인터뷰에서는 "일본이 이미 전쟁으로 잘못된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야 말로 생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7년에는 아사히신문에 쓴 칼럼에서 제국주의의 상징인 기미가요(君が代) 대신 새로운 국가를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가천의과학대학교로부터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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