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은퇴? 연장?…안현수의 인생 고민은 "현재 진행형"

입력 2017-07-17 16:15
현역 은퇴? 연장?…안현수의 인생 고민은 "현재 진행형"

"평창 이후에도 현역 연장할 생각도…가족과 고민 중"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마라톤으로 치면 지금 40㎞ 지점을 지났습니다.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즐겁네요."

이제는 '빅토르 안'이라는 러시아 이름이 익숙해진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32)는 요즘 심경이 조금 복잡하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스링크에서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뜨거운 호흡을 토해내고 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면서 한국 쇼트트랙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안현수는 무릎 부상의 여파 때문에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며 인생의 굴곡을 심하게 느꼈다.

절박한 순간에 러시아빙상연맹의 러브콜이 왔고, 안현수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심정으로 2011년 러시아 귀화를 선택한 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는 '불꽃 투혼'을 발휘했다.

소치 올림픽을 현역 생활의 마지막으로 생각했지만, 안현수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소치 올림픽을 통해 30대에 접어든 안현수에게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고통'으로만 느껴졌던 힘겨운 훈련이 재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7일 송파구 방이동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 안현수는 '평창 올림픽이 현역 생활의 마지막이 되나'라는 질문에 "소치 올림픽 이후에 선수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라며 "평창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솔직히 몸 관리가 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안현수와 일문일답.





-- 러시아 대표팀에서도 고참급인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말로 해주는 것보다 후배들과 함께 스케이팅하면서 가르쳐주는 부분이 더 많다. 나도 어릴 때는 선배들의 모습을 따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러시아 후배들이 질문하면 기꺼이 대답해주면서 노하우를 전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현재 몸 상태는.

△ 지금은 체력훈련이 끝난 터라 몸도 힘들고 스케이팅 속도도 잘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솔직히 욕심을 내서 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국 평창 올림픽이다. 올림픽에 앞서 네 차례 월드컵 시리즈와 한 번의 유럽선수권대회를 치러야 한다. 천천히 몸을 끌어올려서 평창에 대비하겠다. 아직 평창 올림픽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지는 않았다. 월드컵 시리즈를 치르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 러시아빙상연맹에서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 솔직히 크게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웃음) 러시아빙상연맹 회장님도 항상 '성적에 부담 느끼지 말고 그냥 최선만 다하라'는 말씀만 하신다.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하고 나서 초반에 성적이 나지 않아 부담도 컸지만 오히려 러시아빙상연맹에서는 기다려줬다. 마음 편하게 운동하고 있다.

-- 귀화한 지 6년째다. 대표팀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보나.

△ 쇼트트랙은 동료와 잘 융합되고 호흡이 맞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대표팀 합류 초기에 러시아 선수들은 한국, 캐나다, 중국 등 강국만 만나면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패배 의식이 짙었다. 같이 훈련하면서 성적도 나고,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겨서 지금은 팀이 아주 좋아졌다.

다만 대표팀 합류 초창기에는 훈련시간이 너무 적어 '이렇게 운동해도 되나'라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훈련량이 내 나이에 적절했다. 한국은 달리기 위주로 지상 운동을 하는데 러시아는 웨이트 트레이닝이 우선이다. 그런 부분에서 몸에 파워가 붙어 훨씬 도움이 됐다.



-- 한국은 올림픽에 나설 선수들이 확정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함께 훈련했던 후배들도 있다. 새로 뽑힌 선수들 모두 체력과 스피드가 뛰어나다. 이번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경험을 충분히 쌓으면 평창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 평창 올림픽 이후의 계획은. 은퇴를 생각하나.

△ 솔직히 몸 관리만 잘하면 선수 생활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힘들게 해온 운동을 쉽게 그만두겠다고 결정하기 어렵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9살 때 시작해 벌써 24~25년 동안 운동을 했다. 되돌아보면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마라톤으로 치면 지금 40㎞ 지점을 지났다. 종착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요새 운동하는 게 오히려 더 즐겁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쇼트트랙이지만 또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쇼트트랙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가족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전혀 다른 일도 하고 싶다. 확실히 지금 결정하기는 어렵다.

-- 평창 올림픽에 나서는 전략은.

△ 모든 선수의 목표는 올림픽 출전이다. 다만 성적에 연연하다 보면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선수들의 실력이 많이 평준화됐다. 그래서 모든 종목을 잘 타겠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특정 종목에 집중해야 한다. 일단 1,500m 종목을 가장 먼저 치르는 만큼 메달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



-- 평창 올림픽에서 야유를 받을 수도 있는데.

△ 관중의 반응이 신경도 쓰이겠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겠다. 러시아로 귀화를 결심할 때부터 충분히 각오했다. 모든 분이 나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 러시아 귀화와 관련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비난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데.

△ 중요한 인터뷰 때마다 이야기 했지만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피해를 봤기 때문에 러시아로 귀화한 게 아니다. 팬들은 러시아 귀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고 이슈가 됐던 부분만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그런 것들을 내가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다. 내가 필요한 상황에서 러시아 귀화를 선택했다. 내가 한국에서 피해를 봐서 러시아로 간 게 절대 아니다.

horn9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