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쇼핑몰에서 맞닥뜨린 직장인의 원초적 공포

입력 2017-07-17 14:32
한밤 쇼핑몰에서 맞닥뜨린 직장인의 원초적 공포

소설 '호러스토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미국 오하이오주의 대형 가구매장 오르스크(Orsk). 북유럽 느낌 물씬 풍기는 이름의 이 브랜드는 제품부터 매장 형태까지 이케아(Ikea)를 꼭 닮았다.

미국 작가 그래디 헨드릭스의 소설 '호러스토어'(문학수첩)에서 오르스크 매장은 직장인의 잠재적 공포가 현실로 나타나는 '유령의 집'으로 변신한다. 소설은 좀비처럼 비틀비틀 일터를 향해 출근하는 매장 직원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비가 오든, 날이 맑든, 반려견이 죽든, 이혼을 했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단 하나의 버팀목이 이곳에 있었다. 바로 일이다."

매일 아침 가구가 무너지고 유리잔이 깨진 채로 발견되는데 보안 카메라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추가근무수당에 혹한 에이미가 몇몇 동료와 함께 밤샘 경비를 서면서 공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글로벌 기업 소유의 대형 할인 매장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며 두려움을 떨쳐보지만 1층 출입구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에이미와 동료들은 '구속의자'에 묶여 유령들에게 고문을 당한다. 오르스크 카탈로그를 잔뜩 넣은 가방을 메고 끊임없이 러닝머신 위를 달리기도 한다. 노동이라는 이름의 고문이다.

유령들은 19세기 교도소 죄수들의 혼령이다. 오르스크 매장은 과거 원형감옥으로 악명높은 교도소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매뉴얼에 따라 쳇바퀴 돌듯 일하고 퇴근하는 오늘날 직장인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몸만 움직이며 반복작업을 하는 죄수들과 얼마나 다른가.

창문도 시계도 없는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듯 헤매다 충동구매하는 고객들도 사실은 정교하게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인다. 소설은 대형 가구매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로 현대인의 소외를 풍자하며 블랙 코미디와 호러를 오간다. 책은 쇼핑몰 지도와 배달주문 신청서 등으로 마치 카탈로그처럼 꾸며졌다. 신윤경 옮김. 320쪽.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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