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들어가던 농작물 물에 둥둥…농심 두 번 울린 하늘(종합)

입력 2017-07-17 14:14
타들어가던 농작물 물에 둥둥…농심 두 번 울린 하늘(종합)

되풀이 되는 물폭탄, 가뭄에 바싹 말랐던 농경지 만신창이

(청주=연합뉴스) 윤우용 박병기 기자 = "10여일 전만 해도 힘없이 시들어가는 고추에 물을 퍼 나르기 바빴는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때문에 더는 농사지을 기력조차 없어요"





충북 보은군 내북면에서 고추와 담배농사를 짓는 이모(60)씨는 17일 폭우에 휩쓸려 엉망이 된 밭을 보면서 무심한 하늘을 원망했다.

산비탈에 자리 잡은 그의 밭은 주변에 수로나 관정이 없어 한해를 심하게 탄다. 올해만 해도 고추 모종을 파종한 뒤 두 달 가까이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으면서 그의 애간장을 태우던 곳이다.

그러던 고추밭이 이달 초 시작된 장마로 해갈되는가 싶더니 10여일 만에 180㎜의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쑥대밭이 됐다. 고추가 자라던 밭고랑은 흙과 자갈에 파묻혔고, 그 위로 거대한 물길이 생겨 흡사 계곡처럼 변했다.

이씨는 "지난 두 달간 지게로 물을 짊어져 나르면서 어렵사리 고추 모종을 살려놨는데, 이번 비로 그동안의 고생이 허사가 됐다"며 "절반은 토사에 묻혔고, 나머지 고춧대 허리가 부러져 못 쓰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증평군 증평읍에서 감자 농사(3천300㎡)를 짓는 김모(51)씨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극심한 가뭄에 감자가 알을 맺지 못한 데다 가까스로 맺은 알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 수확을 미뤄왔는데, 이번 비로 밭이 물에 잠기면서 수확이 물 건너갔다.

김씨는 "며칠간 살을 찌워 수확하려던 계획이 이번 비로 완전히 물거품됐다"면서 "그동안 흘린 땀이 억울할 뿐이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지난 16일 청주를 중심으로 쏟아진 200㎜ 안팎의 물폭탄에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충북에서만 3천㏊ 가까운 농경지가 침수나 매몰·유실됐고, 4만마리가 넘는 가축이 죽었다.

청주시 미원면과 무심천 주변은 하천이 범람하면서 비닐하우스가 겨우 지붕만 내놓거나 활처럼 휘어지기도 했다. 농민들이 가뭄 속에서 힘겹게 모내기했던 논은 거대한 호수가 됐다.

보은군 내북면사무소 차현주 부면장은 "아직은 물에 잠겨 있는 농경지가 모습을 드러내면 피해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물폭탄을 쏟아 붙는 최근의 호우 양상은 최악의 가뭄에 지칠대로 지친 농심에 대못을 박고 있다. 혹독한 가뭄에 빠싹 말라있던 농경지여서 물폭탄이 떨어지는 곳마다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지난 11일에는 진천군 덕산면 일대에도 큰비가 내려 수박 재배농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

수확을 불과 나흘 앞두고 내린 장대비로 자식처럼 키운 수박을 모두 잃은 농가도 있다.

진천군 덕산면 신척리 김모(58)씨는 "물에 잠긴 수박은 이틀만 그대로 두면 썩는다"며 "폭우로 5천여통의 수박과 함께 추석 대목을 겨냥해 키우던 가을 수박 모종까지 모조리 못 쓰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최근 두 차례 폭우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워낙 커 폐농한 뒤 다른 작물을 파종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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