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와 의사가 따로일 수 없다…'주비퀴티'의 세계

입력 2017-07-17 11:04
수의사와 의사가 따로일 수 없다…'주비퀴티'의 세계

美 심장병 전문의가 펴낸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99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뇌염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노인들의 사례가 잇따라 보고됐다. 조사에 나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세인트루이스뇌염의 발병을 신속히 선포했다.

비슷한 시기 뉴욕 일대 조류의 떼죽음을 추적하던 수의사 트레이시 맥나마라는 죽어가는 새들과 노인들 사이에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CDC는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 질병을 해결하는 곳'이라며 연구 내용을 공유하겠다는 맥나마라의 제안을 묵살했다. 웨스트나일바이러스가 북미 대륙에 첫 출현, 새와 인간 모두에게 끔찍한 피해를 주고 있음이 밝혀진 것은 이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번진 이후였다. 웨스트나일 사태를 정리한 보고서에는 "수의학 분야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실렸다. 지금까지 이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은 환자는 1천 명을 웃돈다.

웨스트나일 사태는 신간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원제: Zoobiquity)에서 동물의 건강과 인간의 건강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원제 '주비퀴티'는 인간과 동물 구분없이 종을 아우르는 접근법을 뜻하는 개념으로, 공저자인 심장 전문의 바버라 내터슨-호로위츠와 언론인 캐스린 바워스가 만들었다.

내터슨-호로위츠는 2005년 LA 동물원 원숭이와의 만남을 계기로 사람과 동물이 같은 심장병을 앓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는 단순히 심장병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 의학의 새로운 성취로 여겨지는 것들을 이미 수십 년 전 수의사들이 알고 있었다는 점도 깨달았다.

책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암에 걸리거나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수많은 동물의 사례를 보여준다. 의사와 수의사가 손잡고 일한다면 이러한 질병들을 더욱 더 손쉽게 설명하고 적절히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사실 한두 세기 전만 해도 동물과 인간은 같은 의사에게 치료받았다. 도시화에 따라 동물이 인간의 일상에서 밀려나면서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더 큰 보상과 명예가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세기 초 갈라진 동물의학과 인간의학 사이에는 이제 큰 벽이 자리하고 있다. 19세기 독일에서 활동한 의사이며 병리학 창시자로 평가받는 루돌프 피르호가 남긴 말이 이 책의 메시지를 요약해 보여준다. "동물의학과 인간의학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 대상이 다르다 해도 거기에서 획득한 경험이 모든 의학의 기반이 된다."

모멘트 펴냄. 이순영 옮김. 488쪽. 2만2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