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의 마지막곡 '화염 속의 천사'…"정화의 시간"

입력 2017-07-16 13:42
윤이상의 마지막곡 '화염 속의 천사'…"정화의 시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202회 정기연주회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하프의 마지막 떨림이 공기 중으로 사라지자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모두 정화되는 듯했다. 이토록 슬프고도 기쁘며 추하고도 아름다운 곡이 있었던가. 금관악기의 불협화음은 고통스러웠지만 이어지는 오보에 솔로는 비통한 아름다움을 뿜어냈고, 팀파니의 타격은 무시무시했지만 그 충격이 가신 후의 하프의 마지막 음은 객석을 편안하게 감쌌다.

지난 14일 최수열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제202회 정기연주회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를 무대에 올렸다. 이 곡은 윤이상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94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관현악곡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대 작곡가의 말년 작품에서야 도달할 수 있는 간결함과 명확한 전달력, 독창적인 음향 세계를 보여주는 걸작이지만 실제 음악회에선 물론이고 녹음된 음원으로도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는 작품이기에 이번 음악회는 더욱 값진 무대였다

일찍이 1995년 4월 5일에 슈파러(W W Sparrer)와 나눈 대화에서 윤이상은 "이 작품의 배경이 군부독재 후기 1991년 5월 민주화 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밝히고 "이 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미 현실에서 여러 번 일어났던 하나의 장면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 채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모습이며, 거기서 이 충격적인 사건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회를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차호성 편역, '윤이상과의 마지막 대화' <음악과 민족> 11호)

이 곡은 우리나라가 민주화 과정에서 겪은 비극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단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영화처럼 묘사하는 곡이라기보다는 그 사건을 음악적으로 기억해냄으로써 점차 무너져가고 있는 '인간성 회복'을 촉구하는 음악으로 들려왔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채롭고 독창적인 작곡기법 덕분이다.

현대사의 비극을 음악적으로 기억해내는 작곡가의 기법은 대단히 놀라웠다. 이 곡에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전통음악의 연주법과 서양음악의 구조적인 특징이 이상적으로 조화되어 있기에 친근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현악 연주자들은 한국 전통음악에서 음을 장식할 때처럼 음과 음 사이를 끌듯이 연주하며 압제 받는 이들의 한을 잘 표현해냈고, 오보에를 비롯한 목관악기들은 미분음(반음보다 좁은 음)을 연주하며 억압된 슬픔을 담아냈다.

또한 구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팀파니의 리듬과 금관악기의 폭발적인 연주가 가미되어 권력자들의 압제를 나타내는 듯했으며, 젊은이의 분신 장면을 담고 있는 후반부에는 일찍이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가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구현해냈던 '마법의 불' 못지않은 현란한 오케스트라 음향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냈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최수열은 오케스트라의 저음부가 좀 더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더블베이스 주자들은 무대 맨 뒤쪽에 일렬로 배치했는데, 이는 음향적으로 매우 훌륭한 효과를 냈다. 다만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나타낸 현악기 소리가 금관악기와 타악기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던 점은 다소 아쉬웠지만, 이 곡 말미에서 하프를 비롯한 현악기들이 고음으로 떨리는 음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길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겼다.

'삶과 죽음의 변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공연에서는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 외에 김봄소리의 협연으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이 연주됐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정화'가 공연 후반에 연주되었다. 이번 무대의 협연자로 나선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는 전보다 한결 힘차고 충실한 소리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속에 담긴 낭만적인 정서를 잘 표현해낸 데 이어, 올해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윤이상의 '작은 새'를 앙코르로 연주했다. 새를 모티브로 한 그 어떤 작품보다도 다채로운 표정을 지닌 윤이상의 '작은 새'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은 이번 음악회에서 '화염 속의 천사' 못지않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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