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억대연봉자에 야근수당 안주는 성과형노동제 강행에 파열음
렌고-정부 전격 합의에 "렌고 대표성 더는 인정 못하겠다" 반발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하면서 억대연봉자에는 야근·휴일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성과형노동제' 도입을 놓고 파열음이 심해졌다.
일본 최대 노동단체 렌고(連合)가 야당과 산별노조들의 반대에도 성과형노동제를 전격 수용해서다.
렌고의 고우즈 리키오 회장은 1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총리관저에서 전격 회담, 억대연봉자에게 야근이나 휴일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성과형노동제의 조건부 수용 방침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과형노동제란 급여지급을 노동성과에 따라 하는 것으로, 노동시간이 기준이 됐던 기존 제도와 다르다.
그 중에서도 논란의 핵심은 연수입 1천75만엔(약 1억780만원) 이상의 증권사 애널리스트, 컨설턴트 등 전문직을 노동시간 규제나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고도프로페셔널 제도'의 도입이다. 이 경우 이들은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해도 사측이 수당을 주지 않으면 받을 길이 막혀버린다.
이 제도는 아베 1차 정권 시대인 2007년에 법제화를 시도했다가 단념한 일본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exemption)제도'를 대신해 아베 총리가 2차 집권한 뒤인 2015년 4월 각의 결정에 따라 국회에 제출됐었다.
이 제도는 기업 측이 연 104일 이상 휴일 확보 등 복수의 과도노동 방지대책 가운데 하나를 채용하는 것을 전제로 도입하려 했지만, 노동계가 "야근수당을 없애려는 법안이다", "과로사가 늘어날 것이다" 등의 논리로 강력히 반발하면서 입법이 되지 않는 상태가 이어졌다.
이런 반대 기류에도 렌고가 정부와 잠정 합의하게 된 것은 오우미 나오토 사무국장 등 렌고 지도부 가운데 온건파들이 극비리에 방침을 수정한데 따른 것이다. 이들 온건파는 지난 4개월 가까이 정부 및 게이단렌과 물밑교섭을 진행하면서도 조직 내에는 진행상황을 대부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8일 회의에서야 "압도적 여당 체제에서 작은 열매라도 따내기 위한 차선책"이라며 과도노동 방지책 수용을 전제로 한 성과형노동제 수용 방침을 산별노조 간부들에게 처음 공개했다.
일본 정부는 렌고의 방향 수정안을 받아들일 방침이고, 19일까지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도 함께 참여하는 노사정합의를 맺어 가을 임시국회에 개정안을 낼 예정이다.
이에 따른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렌고 안팎에선 일부 지도부의 방침 수정에 대해 '변절'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렌고 산하 산별노조인 '전국커뮤니티 유니온'은 "장시간 노동 시정을 요구해 왔던 조합원에 대한 배신행위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항의성명을 냈다.
고도프로페셔널제 대상자인 30대 컨설턴트는 "건강확보 조치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는 실적을 못 올리면 해고다. 건강을 해치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40대 금융시장 분석가도 "리포트 마감이 다가올 때 등 휴일노동을 자주 재촉받는 실정이다"며 "이런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휴일근무수당 등이 지급되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노동전문 변호사나 노동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렌고의 노동자에 대한 대표성을 더는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렌고의 갑작스러운 입장 전환이 2015년 10월 취임뒤 올 10월 임기가 만료되는 고우즈 회장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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