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 연구' 소설가 박상륭 별세

입력 2017-07-13 10:23
'죽음의 한 연구' 소설가 박상륭 별세

이달초 캐나다서 타계…죽음과 구원의 문제에 평생 천착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특유의 철학·종교적 사유로 죽음과 구원의 문제에 천착해온 소설가 박상륭이 이달 초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향년 77세.

13일 문단에 따르면 작가는 이달 1일 캐나다에서 별세했다. 그는 1969년 캐나다로 이주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현지에서 보내며 작품활동을 해왔고 일 년에 한 차례씩 귀국해 소수 문인과 교류해왔다.

박상륭의 별세 소식은 장례절차 등 수습을 마친 부인이 전날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전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한 지인은 "올해 초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박상륭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김동리(1913∼1995)로부터 수학했다. 동창생 이문구(1941∼2003)가 문학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다.

1963년 '아겔다마'가 사상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신약성서 속 유다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었다. 한때 사상계 문예담당기자로 일하다가 1969년 간호사였던 부인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했다. 병원 시체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소설을 썼고 나중에는 서점을 운영했다.

'죽음의 한 연구'는 박상륭 문학의 정수를 담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바닷가에서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 서른세 살의 화자가 '유리'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살인을 불사하며 40일간 구도하는 이야기다. 기독교·형이상학적 사변을 바탕으로 설화와 신화, 주역과 연금술의 세계를 넘나드는 관념소설이다. 1996년 박신양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평론가 김현은 '죽음의 한 연구'를 두고 "이광수의 '무정' 이후 가장 잘 쓰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완성한 1973년 작가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와 같은 서른세 살이었다. 1994년 4부작으로 완간한 '칠조어론', 2008년 발표한 장편 '잡설품'은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 격이다.

'죽음의 한 연구'는 육조(六組) 촌장의 고행을 그린 이야기였고, '칠조어론'에는 스스로 칠조(七組)라 칭하는 인물의 설법을 담았다. '잡설품'은 주인공이 고행 끝에 유리의 팔조(八組)가 되는 과정이다. 박상륭은 '경전과 소설 사이에 있는 글'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작품을 잡설(雜說)이라고 불렀다.

박상륭은 생전 자신의 소설이 난해하다는 평가에 대해 "선의의 편에서는 찬사일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작자와 독자 사이를 소원하게 해 결국은 무조건적으로 그 작가의 작품을 기피하게 하는, 작가로서는 매우 손해나는 찬사"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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