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골프 '대세' 김지현 "내 성공 비결은 현실 직시·인정"
"잘 하고 싶은 열망 있지만 실망과 좌절은 않는다"…"나아질 거란 희망 간직"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새로운 '대세'로 떠오른 김지현(26)은 지난 2일 용평리조트 오픈을 마친 뒤 일주일을 온전히 쉬었다.
14일부터 열리는 카이도 여자오픈을 앞두고 필드 복귀를 준비하는 김지현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시즌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목, 금, 토, 일요일을 즐겼다"고 말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좀 어색하기도 했다는 김지현은 그래도 운동은 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KLPGA 투어에서 7년을 뛰면서 124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던 김지현은 125번째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고 7주 뒤 두 번째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7일 뒤 메이저대회인 한국여자오픈을 제패했다.
김지현은 "아직 '대세'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다. 실감도 나질 않고 아직 부족한 게 많다"라면서도 "전에는 골프 치는 사람 아니면 알아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알아봐 주시는 분이 많아졌다. 그게 좀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지현은 첫 우승 때부터 세 번째 우승 때까지 한결같이 "우승 욕심을 내려놨다. 마음을 비웠더니 우승이 따라왔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그토록 우승과 인연이 없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우승 봇물을 터트리게 됐는지 토론이나 다름없이 진행됐다.
-- 7년 동안 없던 우승이 이렇게 이어지는 이유가 진짜 뭔지 말해달라.
▲ 왜 그동안 우승을 못 했는지를 정말 나도 몰랐다. 몇 번 기회를 놓친 적이 있는데 운이 없나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승하고 난 뒤 내린 결론은 우승할 만큼 실력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올해 우승이 나온 건 이제 실력이 우승할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준비됐다는 게 무슨 뜻인가?
▲ 우선 샷이 안정됐다. 내가 제일 부족했던 점이 쇼트게임이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좋아졌다. 거기다가 작년보다 퍼팅도 좋아졌다. 파세이브율이 훨씬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꾸준해졌고 우승도 나온 거다.
-- 겨울 미국 전지훈련에서 샷과 쇼트게임, 체력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건 익히 들었다. 그렇다면 새가슴이라던 정신력도 달라진 건가.
▲ 새가슴 낙인은 억울하다. 사실 실력이 없으면 배짱이 생길 수 없는 것 아닌가. 겨울 전지훈련에서 안성현 코치가 "이제 준비가 됐다"고 하더라.
워낙 냉정한 분이다. 내가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을 때 "넌 우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고 잘라 말하던 분이 그렇게 말해주니 자신감이 생겼다.
--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다 열심히 한다. 열심히 했기에 성공했다는 건 설명이 부족하다. 김지현만의 비밀이 있을 것 같다.
▲ 현실 직시다. 나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인정한다. 인정해야만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안성현 코치와 잘 맞는다. 안 코치는 내 단점을 서슴없이 지적한다. 사실 프로니까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인정을 해야 그걸 보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워낙 마음 비우기, 마음 내려놓기를 강조해서 정말인가 싶기도 하다. 우승에 대한 열망을 접어서 우승할 수 있었단 말인가.
▲ 우승 세 번 모두 우승을 하려고 마음먹어서 했던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우승이라면 작년이나 재작년에 벌써 했을 것이다. 정말 (마음을) 비우니까 되더라.
-- 한번이 어려울 뿐 두 번, 세 번 우승할 때는 여유까지 넘치더라. 표정도 더 밝아졌다. 본인도 그런 걸 느끼나?
▲ 나도 느낀다. 다들 그렇다고들 한다. 작년에도 늘 밝은 표정으로 경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우승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는 없었기에 나도 모르게 드러났던 것 같다. 한번 우승한 다음에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다. 그 덕분에 경기력도 더 살아나는 것 같다.
-- 그래서 세 번 우승 가운데 가장 소중한 우승이라면 첫 번째 우승인가?
▲ 그렇다. 잊지 못할 우승이다.
-- 처음 우승할 때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8m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우승할 수 있었다. 사실 들어갈 확률이 높지 않은 어려운 퍼트였다. 그게 우승 퍼트인지 몰랐다고 했다. 다음에 반드시 넣어야 우승할 수 있는 퍼트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자문해봤나?
▲ 그때 우승이 걸린 퍼트라는 걸 알았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도 짧게만 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고 라인도 또렷하게 보였다.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일단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겠다. 결과를 생각하기보다는 내 퍼팅 루틴만 지키고자 하겠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개의치 않겠다는 생각뿐이다.
-- 두 번의 우승이 후배 이정은에게 거둔 역전승이다. 라이벌 의식이 생길 만도 한데?
▲ 절대 그렇지 않다. 골프가 상대와 치고받는 경기가 아니지 않나. 나와의 싸움이다. 나랑 싸움한다고 생각한다.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선수가 라이벌이라면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다. 투어에서 뛰는 모든 선수가 다 잘한다. "쟤는 꼭 이겨야지!"이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의식하고 친다면 더 안 풀렸을 거다. 골프라는 건 꼭 누굴 꺾어야 넘버원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또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나보다 1타라도 덜 친 선수가 있으면 우승은 못 한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할 뿐 다른 선수는 신경 쓰지 않는다.
-- 그렇다면 부러운 선수가 있는가?
▲ 고진영 선수의 쇼트게임이 부럽더라. 쇼트게임이 내 약점이니까. 박성현이나 김민선의 드라이버샷? 많이 나가면 좋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부러워하지는 않겠다.
-- 골프는 어떻게 시작했나?
▲ 어릴 때 몸이 약했던 모양이다. 말라깽이였다고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부모님이 운동을 많이 시켰다. 다행히 운동 신경이 좋았던지 운동은 다 잘했다. 쇼트트랙과 수영은 수준급이었다. 그러다 골프를 하던 고종사촌 오빠가 같이 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직업이 됐다.
-- 주니어 시절에 특출한 이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선수였나?
▲ 주니어 때도 (국가대표) 포인트를 따려고 억지로 대회를 나가려고 하질 않았다. 뭔가 얽매이기가 싫었다. 그리고 어차피 프로 선수로 가는 과정이니 기본기에 충실하자는 생각이었다. 국가대표 되고 무슨 이름난 대회 우승하고 그런 거에 매달리지 않았다.
-- 혹시 목표 의식 결여는 아니었나?
▲ 뭔가에 매달리면 더 안 되더라. 내 현실보다 눈높이가 높으면 안 되지 않나?
-- 주니어 때도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고 2부투어를 거쳤고 프로 와서도 오랫동안 무명이었는데 골프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실력이 늘 발전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잘하다가 갑자기 고꾸라지거나 슬럼프에 빠질 때 생기는 것 아닌가. 많은 선수가 겪었다는 입스도 겪은 적이 없다. 2부투어로 떨어졌을 때도 내가 실력이 모자라서 왔구나,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다시 올라가려고 노력하자는 생각뿐이었지 좌절하지는 않았다.
--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성적이 나지 않았는데 그럴 수 있었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 아까도 말했듯이 현실 직시, 현실 인정이 내 장점이다. 내가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처럼 스윙할 수 없지 않은가. 그냥 나한테 맞는 스윙 하자는 식이었다. 많은 선수가 (좋은) 스윙에 집착한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잘 해보겠다는 열망은 나 역시 누구보다 강했지만 그게 안 된다고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잃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아무런 징크스도 없다.
--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래도 올해 연말에 내가 무엇을 이뤄놨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이 있다면?
▲ 정말 없다. 사실 전에는 연말 시상식에서 멋진 드레스를 입고 단상에 올라 상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우승했으니 연말에 드레스 입고 단상에 올라갈 수 있게 됐다. (KLPGA투어는 우승을 한 번이라도 거둔 선수에게는 연말 시상식 때 상을 준다) 예전에는 정말 무슨 대회 나가서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그런데 더 역효과가 나더라. 나라고 욕심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걸 내걸고 싶지는 않다.
-- 해외 진출은 뜻이 없다고 했는데.
▲ 미국은 나이도 있고 아직 실력도 부족해서…나중에 일본 쪽은 한번 생각해보겠다.
-- 어린 나이에 너무 달관한 듯싶다.
▲ 티 안 내서 그렇지 많이 아팠다. 실패했을 때 많이 울었다. 나도 욕심은 있었다. 하지만 힘든 날이 많았기에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된 거라고 믿는다. 김해림 언니나 배선우, 장수연이 우승했을 때 내 일처럼 기뻤던 것도 다 같은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우승했을 때 함께 기뻐해 준 동료들이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 아직 뚜렷하게 정해놓은 건 없다. 좌우명도 없다. 먼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건 그것에 얽매이기 싫어서다. 달성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받지 않나. 전에는 경기 나갈 때 오버파만 치지 말자, 또는 홀마다 보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않는다.
-- 결혼 계획은 없나?
▲ 그건 생각해놨다. 서른두세 살 때 결혼할 생각이다.
-- 결혼할 남자는 있나? 이상형이 있다면?
▲ (결혼할 상대는) 당장은 없지만…이상형도 따로 없다. 첫인상, 첫 느낌이 중요하다.
-- 어릴 때 운동을 많이 했고 운동 신경이 좋다면 다른 운동도 즐기는 편인가?
▲ 익사이팅한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었는데 골프 선수 하면서 다 않게 됐다. 이상하게도 테니스나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하면 팔에 알이 밴다. 수영도 골프 시작하면서 않은 지 오래다. 골프 선수 하면서 취미가 아예 없어졌다.
-- 그러면 스트레스나 피로를 어떻게 푸나?
▲ 맛난 음식 먹는 게 제일 좋다. 해산물은 썩 좋아하지 않고 고기를 즐긴다. 한식이나 양식 다 좋아한다. 피자, 파스타도 다 좋아하고…영화도 즐겨 본다. 극장에 가서도 보고 집에서 영화 채널로 본다.
스포츠클라이밍 같은 것 해보고 싶은데 현실은 맨날 웨이트트레이닝이나 하면서 산다. 그런데 굳이 취미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만약 재미를 붙인 취미가 있는데 골프 때문에 못하면 슬플 것 같아서다.
-- 반려견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몇 번 봤다.
▲ '버디'라는 이름의 포메라니안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키우기 시작했다. 벌써 9살이다. 나이가 들어서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가질 못해서 주로 집에서 지낸다. 너무 정이 깊게 들어서 세상을 뜬다면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못할 것 같다.
-- 미모가 상당한데 화장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 골프 선수 아니냐. 연예인이 아니다. 화장을 잘하지도 못한다. 화장하면 판다 된다. 화장할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더 자자는 생각이다. 그리고 꾸며봤자 경기할 때는 스포츠 선글라스를 끼니 하나 마나다. 눈이 자극에 약해서 경기할 때는 꼭 스포츠 선글라스를 끼다 보니 화장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여자니까 피부 관리는 열심히 한다. 화장은 나중에 드레스 입고 시상식 할 때 한 번이면 족하다.
-- 이제 다시 경기에 나서는데 이번 대회 목표도 늘 그렇듯이 1차는 컷 통과, 다음은 톱10 입상인가?
▲ 그렇다. 더구나 일주일을 쉬었으니 경기 감각도 떨어졌는데 욕심내면 안 된다. 그리고 '1차 목표 컷 통과'와 컷 통과하면 '톱10' 입상을 목표로 뛰다 보니 잘 되더라. 그래서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하려고 한다. 최대한 욕심을 버리는 게 내 성공의 비결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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