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같은 판타지로 한겹 더 쌓아올린 '하루키 월드'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내일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8)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화자는 서른여섯 살 초상화가다. 예술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기계적 작업에 자괴감을 느끼던 차에 아내마저 6년간의 결혼생활을 접자고 한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 말고는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집을 나온 화자는 미대 동기 아마다 마사히코의 아버지가 쓰던 아틀리에에서 생활한다. 저명한 일본화가인 아버지 아마다 도모히코는 치매 증세로 요양원에 들어가 있다. 초상화를 버리고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려는 화자가 천장 위에서 도모히코의 미발표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본격 시작한다.
그림은 아스카 시대 복장의 청년이 노인의 가슴 한복판에 검을 찔러넣어 피가 넘쳐나는 폭력적인 장면 묘사다. 온화하고 평화로운 도모히코의 화풍과 정반대지만 스타일과 기법을 보면 그의 작품이 틀림없다. 화자는 '기사단장'이라는 인물이 살해당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기억해낸다. 모차르트 오페라를 아스카 시대로 옮긴 일본화였다.
1936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해 서양화를 배우던 도모히코는 왜 일본화로 전향했을까. 평소 화풍과 전혀 다른 '기사단장 죽이기'를 그려놓고 수십 년 동안 숨겨둔 이유는 뭘까. 궁금증이 커져가는 와중에 집 뒤편에서 밤마다 의문의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멘시키(免色), '색을 면하다'라는 뜻의 묘한 이름을 가진 인물이 거액을 제시하며 초상화를 의뢰한다. 화자는 멘시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도모히코의 과거와 방울소리의 비밀을 함께 풀어간다. 방울소리가 나는 돌무덤을 파보니 원형의 석실이 있고 방울을 울린 '기사단장'도 곧 모습을 드러낸다.
도모히코가 그린 기사단장이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작가는 화자와 기사단장, 멘시키의 대화를 통해 도모히코가 살해당하는 기사단장을 그려 넣은 이유를 추론해간다.
멘시키의 조사에 따르면 도모히코의 유학시절 오스트리아 연인은 1938년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나치 고관 암살을 기도했다가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 도모히코는 '정치적 배려'로 목숨을 건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침묵을 지키라는 다짐을 받은 그는 참혹한 기억을 보다 상징적인 일본화의 필치로 그려놓고 발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사단장은 실현되지 못한 계획 속 나치 고관일지 모른다.
도모히코의 또 다른 비극은 피아노를 전공하던 동생 쓰구히코의 자살이다. 동생은 나치 고관 암살기도 한 해 전인 1937년 중일전쟁에 참전했다. 중국에서 트라우마를 얻고 돌아와 다락방에서 손목을 그었다. 도모히코는 동생이 다락방에서 자살한 점을 의식해 그림을 천장 위에 숨겨둔 것 아닐까. 일본 현지에서 논쟁을 일으킨 난징(南京) 대학살 언급이 여기서 나온다.
"일본군이 격렬한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령하고 대량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전투 중의 살인도 있고,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죠. 포로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던 일본군이 항복한 군인과 시민 대부분을 살해해버린 겁니다. 정확히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세부적인 수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이 있지만, 어쨌든 엄청난 수의 시민이 전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하지만 사십만 명과 십만 명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본 우익의 공세에 시달린 이 서술은 그러나 세계시민의 상식에서 보면 평이한 수준이다. 하루키는 도모히코의 연인과 동생의 비극을 통해 1930∼1940년대 전세계를 피로 물들인 양대 축이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자명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하루키의 역사관보다는, 1979년 데뷔 이후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어온 이른바 '하루키 월드'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화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로버타 플랙, 텔로니어스 멍크와 존 콜트레인을 듣고 여자친구는 빨간색 미니 쿠퍼를 탄다. 판타지 체험에는 기사단장의 모습을 빌린 '이데아'라는 철학적 개념이 동원되고 화자는 일종의 치유를 경험한 뒤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문예평론가 사이토 미나코(齊藤美奈子)는 하루키 소설이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랙티브 텍스트"라고 말했다. 독자들은 작품 속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종의 게임을 하고 하루키는 이에 호응해 더 많은 수수께끼를 낸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괄호를 쳐가며 직접 퀴즈를 내기도 한다. 등장인물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야구모자를 썼다면서 "왜 하필 클리블랜드일까?"라고 되묻는 식이다.
기사단장이 그림에서 현실로 걸어 나온다는 동화적 설정은 예상 못한 웃음을 선사한다. 60㎝의 키에 고대 일본인 복장을 하고 허리춤에 칼을 찬 채 화자를 '제군'이라고 부르는 기사단장. 그림을 본 뒤 행방이 묘연해진 소녀 아키가와 마리에를 찾으려면 자신을 죽여야 한다며 칼을 뽑아 건넨다. 고심 끝에 칼을 받아든 화자가 말한다. "이 칼은 제게 너무 작습니다. 다루기 힘들어요." 몸에 맞춘 미니어처 칼이었다. 기사단장은 한숨을 내뱉는다.
하루키의 남자들이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하는 성애 묘사도 어김없다. 화자는 다양하되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성관계를 한다.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 벌써 서너 차례다. 홍은주 옮김. 1권 568쪽, 2권 600쪽. 각 1만6천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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