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자본주의 심화가 제1차 세계대전 낳았다"

입력 2017-07-11 13:23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심화가 제1차 세계대전 낳았다"

버트런드 러셀의 '자유와 조직'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됐다. 이날은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이었고, 황태자비는 임신 중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를 계기로 한 달 뒤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유럽은 이해관계에 따라 양분됐다. 독일과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는 오스트리아 측에 가담했고, 이에 맞서 러시아와 프랑스, 영국이 연합해 싸웠다.

4년간 유럽 대륙을 전장으로 만든 제1차 세계대전의 표면적 원인은 사라예보 사건이었다. 하지만 각국 사이의 갈등은 이미 임계치에 이르러 있었다.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은 갈등이 폭발할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다.

영국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계몽주의가 꽃피고 산업혁명에 성공한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한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는 역사에 답이 있다고 봤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1814년부터 100년간의 역사를 추적해 '자유와 조직'(Freedom and Organization)을 펴냈다.

출판사 사회평론이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이 책은 1934년에 집필됐지만, 지금도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단적으로 러셀은 결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1914년 전쟁을 낳은 동일한 원인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으며, 국제적 통제로 저지되지 않는다면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문명사회 인류를 집단 자멸에서 구하는 길은 평화주의 정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제조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불운하게도 유럽은 5년 뒤에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저자가 언급한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는 19세기 유럽과 미국 역사의 동인을 '자유'와 '조직'으로 설명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에서 유래한 자유는 개인과 민족의 자유, 최소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자유는 나폴레옹 전쟁의 전후 처리를 위해 1814년 성립된 보수주의적 빈 체제가 무너지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자유는 영국에서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자유'와 자본가들이 중시하는 '경제적 자유'로 분화했다. 미국에서도 두 가지 자유가 19세기 내내 대립했지만, 결국에는 경제적 자유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렸다.

한편에서는 자유가 민족주의와 연결됐다. 민족주의는 모든 나라가 야망을 이루기 위해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는 제국주의로까지 나아갔다.

저자는 19세기 역사의 또 다른 축인 조직이 산업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대두했다고 강조한다. 조직은 국가 권위와 영향력의 확대, 출판·철도·전보 등의 개발로 인해 사회가 긴밀해지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자유와 대비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저자는 둘을 대립항으로 설정한다. 그러고는 조직을 대표하는 인물과 국가로 비스마르크의 독일을 꼽는다. 또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에도 조직이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자유와 조직이 극한까지 치달은 결과,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국가 간 관계에서의 무제한적 자유'와 '국가 내 고도의 조직화'가 지배적 신조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19세기는 국제적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경제조직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며 "경제조직과 민족 국가의 동맹은 국제적 무정부 상태를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와 산업화를 규제할 국제기구나 규범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극단적 충돌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저자의 주장은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도 적용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일본의 개헌 추진,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모두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국제기구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러셀의 조언을 포함해 전쟁을 피하고 공존을 도모할 해법을 모색할 시점이다.

최파일 옮김. 744쪽. 3만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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