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G20 순방결산] 다자무대 성공적 데뷔…4强외교 복원
9개국 정상과 양자회담·3개 국제기구 수장 면담…외교 다변화 시동
美·中·日·러 4强 외교 마무리…北도발 대응기조 확인
G20 정상들도 北문제 공감대 형성…의장국 獨 "北 조치 필요" 이례적 회견
정상들과 신뢰·우의 구축 불구 사드·위안부 해법 못찾아 한계 노출
(함부르크=연합뉴스) 노효동 이상헌 기자 = 지난 5일(이하 독일 현지시간)부터 4박6일간 이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순방을 계기로 한동안 멈춰있던 한반도 주변 4강 정상외교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독일 공식 방문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각각 회담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계기에 만났지만 지난달 말 워싱턴D.C.에서 첫 양자회담을 한 만큼 4강 정상과 모두 한차례씩 단독회담을 마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를 위해 최고의 압박·제재를 가하되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며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한반도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의 주도권을 보장받는 성과를 거뒀다.
G20 정상회의에서도 투트랙 기조의 대북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자유무역 지지와 기후변화 협약 준수 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확인했다. 동시에 4강을 제외한 양자회담과 국제기구 수장들과의 면담을 통해 외교 다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관련 정상 간 대좌에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위안부 문제 등 주요 갈등사안에 대해서는 실타래를 풀지 못해 한계를 노출했다.
◇ 4强 정상외교 1라운드 마무리…'신뢰구축' 방점 = 문 대통령이 취임 58일 만에 4강 정상외교를 신속하게 마무리하면서도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법에 대한 큰 틀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당초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정농단 사태로 7개월여간 마비된 한국의 정상외교를 단기간에 복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었다.
특히 4강 외교의 핵심축인 미국이 전혀 다른 색채의 트럼프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무대응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로 한미동맹의 가치를 재확인한 데 이어 역대 정권 중 가장 빠른 한미정상회담을 열면서 정상 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새 정부의 군사옵션을 배제한 평화적 해법을 지지하면서 양국간 신뢰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는 한미정상회담 나흘 만에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탄)급 도발을 감행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G20 계기에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초청해 문 대통령의 대북기조를 그대로 담은 첫 '한미일 공동성명'을 도출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불과 6일 만에 미국 정상과 대좌하는 유례없는 사례로 기록되면서 두 정상 간의 '캐미스트리'가 어느정도 형성됐다는 말들이 나왔다.
지난달 말 한미정상회담에서 평화적 방식의 대북 해법을 도출한 직후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전혀 다른 국면이 도래했음에도 함부르크에서의 한미일 정상 간 대북 해법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거론된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지 이견이 노출될 여지가 있지만, 정상회담이 큰 틀의 밑그림과 방향타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향후 북핵 로드맵 도출을 위한 4강과의 실무협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기조는 중국·일본·러시아와의 양자회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중국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강한 대북 제재·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남북대화 복원과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에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시 주석이 지지한 것은 중국도 한반도 이슈의 이니셔티브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시 주석은 한미일 정상이 공론화한 '중국 역할론'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미국 책임론'으로 응수했고, 한미일 정상회담을 의식한 듯 문 대통령에게 "한미일 협력체제로 가려는 것이냐"고 불만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한국 외교의 중심축에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해당한다며 다만 북한의 도발 국면에서는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對中) 관계 갈등의 핵심인 사드 해법은 도출되지 못했다. 시 주석은 사드 철회를 요구했고, 문 대통령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로 한반도 위협 요인이 없어져야만 사드가 철회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팽팽한 입장차를 보였다.
하지만 두 정상은 고위급 채널을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는 등 확전을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여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아베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우리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이해를 얻어내는 동시에 정상 간 셔틀외교를 복원하기로 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 한동안 끊겼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추진하기로 해 동북아 3국의 공조 마련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 정상이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점은 새 정부에서도 한일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다른 관계 발전과 분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한으로부터도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지지와 함께 '북핵 불용' 입장을 확답받는 동시에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9월 동방경제포럼에 주빈으로 초청했고 문 대통령이 즉석에서 수락하면서 두 정상은 첫 만남에서부터 신뢰를 확인했다.
◇ 다자외교 무대 성공적 데뷔 = 문 대통령은 독일 공식방문 기간과 G20 정상회의 기간인 5∼8일 나흘간 모두 9개국과 10차례의 양자 정상회담을 했다.
이중 한반도 주변 4강을 빼면 독일·프랑스·인도·캐나다·호주·베트남 등 6개국 정상과 첫 만남을 갖고 현안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독일의 경우 대통령과 실권을 지닌 총리까지 두 번의 정상회담을 소화했고, 캐나다는 당초 예정에 없었으나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회담이 이뤄졌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했고 EU(유럽연합) 정상회의 의장, 유엔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등 3개 국제기구 수장과도 면담을 이어갔다.
4강 외교를 넘어 외교 다변화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문 대통령이 평소 4강 외교 탈피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독일 공식방문과 G20 정상회의는 새 정부의 외교 다변화 정책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문 대통령이 주변 4강과 형성한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해법을 여타 G20 정상들과도 공유한 점은 주목되는 지점이다. 한반도 문제를 4강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적인 이슈로 확산하면서 북한을 보다 압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7일 비공개 리트리트 세션 논의결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우리는 모두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새로운 위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번 위반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기를 희망한다. 이에 대해서는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제문제를 협의하는 최고위급 협의체인 G20 정상회의가 정치·안보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공조 의지를 분명히 하며 다자무대에 연착륙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순방에 문 대통령을 수행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양자를 넘어 다자 차원의 정책 공조를 주창하는 등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국격 제고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김 부총리는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이로 인한 양극화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참가국 대다수의 고민이었음을 확인했다"며 "우리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사람중심 투자, 공정 경제, 혁신 성장을 핵심축으로 하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에도 G20이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기로 했고, 문 대통령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정책적 노력을 강조한 것도 하나의 성과라는 분석이다.
특정 정책에 대해 미국 눈치만 보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와 보조를 맞춤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지를 폭넓게 확보할 기반을 다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honeyb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