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동네에 또" vs "장애인은 어디로"…'님비' 논란 재연

입력 2017-07-07 14:58
"왜 우리 동네에 또" vs "장애인은 어디로"…'님비' 논란 재연

서울 특수학교 증설 2002년 이후 올스톱…강서구 설립 난항

8개 자치구 특수학교 '0'…"장애인 거부가 비정상…자립실패 사회책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지역주민이 아닌 사람 색출부터 합시다."

지난 6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 한 지역주민이 '색출'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토론회를 개최한 서울시교육청 측에 거세게 항의했다.

이날 토론회는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지적장애 학생 106명이 다닐 수 있는 16학급 규모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논의하고자 마련됐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지난 10개월 동안 이번 토론회를 열어달라고 요구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토론회는 본격적인 논의는 해보지도 못한 채 고성을 주고받으며 공전만 거듭하다가 1시간여 만에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

시비는 김남연 서울장애인부모회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한 것을 지역주민들이 문제 삼으면서 불거졌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주민들은 공진초 터 활용 방안은 지역발전 관점에서 논의할 문제여서 토론회에는 지역주민만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가칭 서진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처음 행정예고한 것은 4년 전인 2013년이다.

행정예고는 주민 반발이 이어지면서 결국 철회됐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 마곡지구 등에 대체부지를 알아봤으나 면적이 너무 작고 용도변경 절차도 필요한 부지였던 데다 서울시와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를 짓기로 확정하고 지난해 8월 다시 행정예고를 했다.

반발은 이전보다 더 거셌다.

새 행정예고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에 제출된 의견이 한 달 만에 무려 2만6천여건에 달했다.

반발이 심해진 데는 이 지역 국회의원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진초 터에 국립한방의료원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해 개발에 대한 주민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가양동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이 태어난 곳으로, 허준박물관과 대한한의사협회가 공진초 터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말 보건복지부 연구용역에서 조사대상 부지 가운데 공진초 터가 국립한방병원을 설립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주민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연구용역 보고서는 공진초 터를 두고 "서울 서쪽에 편중돼 서울의 각 지역과 주변 도시와 인접성은 다소 미흡하다"면서도 "다른 곳보다 한방병원 자리로서 상징성 면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주민들은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서울시교육청도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공진초 터는 교육청 소유다.

또 도시계획상 학교부지로 이미 설정된 데다가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어 적은 비용으로 이른 시일 안에 특수학교를 세울 수 있다.

부지면적이 총 1만1천여㎡로 특수학교와 함께 주민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등 복합개발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서울에는 15년 전인 2002년 종로구에 경운초등학교가 개교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곳의 특수학교도 새로 문을 열지 못했다.

특수교육 수요는 상존하는데 학교 신설은 멈춰있으니 장애인 학생들은 집 주변 학교에 다니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교육청이 특수학교 재학생 4천6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통학 시간이 30분 이상∼1시간인 학생이 전체의 41.8%(1천943명)였고, 1∼2시간인 학생도 3%(13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강서구에는 화곡동에 교남학교라는 특수학교가 한 곳 있다. 주민들이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교남학교는 이미 학생 정원이 모두 찼다.

학급당 평균 학생이 중학부 6.3명, 고등부 7.3명으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규정한 상한선(중학교 6명·고등학교 7명)을 이미 넘어섰다.

이처럼 장애인 교육시설에 대한 인근 지역 주민의 반발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른바 '님비'(NIMBY) 현상이라 불리는 지역이기주의다.



2015년에는 동대문구 성일중에 성인발달장애인직업센터를 만드는 일로 장애인 학부모와 비장애인 학부모가 서로를 향해 무릎을 꿇고 양보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의 마찰을 우려하며 서울시교육청 등이 사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1997년 강남구 일원동에 발달·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밀알학교가 설립될 때는 지역주민들이 "초등학교 대신 특수학교가 들어서 자녀들이 피해를 보고 부동산 가치도 떨어졌다"며 행정소송과 함께 100억원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아직 특수학교가 없는 서울 자치구는 양천·금천·영등포·용산·성동·동대문·중랑·중구 등 8곳이다. 현재 중랑구에도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주민 반발에 성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누리꾼은 "장애인 자립을 위한 학교를 거부해 장애인들이 자립하지 못했을 때 그 부담은 비장애인이 짊어져야 한다"며 "장애인과 더불어 살기 거부하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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