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이 짧은 소설로 그린 '생활의 저편' 그리스
신간 '그리스는 달랐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백가흠(43)이 짧은 소설 21편을 엮은 '그리스는 달랐다'(난다)를 냈다. 여행이나 관광이 아닌, 산책에서 얻은 글들을 펴내는 '걸어본다' 시리즈 열네 번째다. 시리즈의 앞선 책들과 달리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다.
소설들은 3개월씩 두 차례 그리스에 머문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허구의 이야기 속에 그리스 곳곳 풍경과 사람들의 정취, 역사와 정세를 펼쳐놓는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 수십 장이 책 한가운데를 채운다.
'그리스에서 가장 그리스적인'은 옛 애인 안젤라를 그리다가 씁쓸하게 재회하는 민우의 이야기다. 민우는 그리스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8년째지만 학위는 더디고 한국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도 접은 지 오래다. 교인들을 데리고 테살로니키에 갔다가 4년 전 헤어진 안젤라의 언니를 찾는다. 안젤라의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사정해보지만 '그녀가 원치 않는다'는 대답만 듣는다.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안젤라를 마주친 건 다시 여행객들 틈으로 돌아온 뒤였다.
'세상의 끝에 깊고 깊은 물빛'의 중년 남자도 20년 전 애인 아나스타샤를 그리워한다. 완치됐다는 암이 재발하자 이번에는 치료를 거부하는 남자. 사랑을 속삭이던 도시 이오안니나를 찾지만 그리스에선 '올리브만큼이나' 흔한 이름을 가진 옛날의 아나스타샤를 만나지는 못한다. 그곳에서 남자는 삶을 내던진다.
작가는 '취업을 시켜드립니다'에서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와 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몰염치를 꼬집는다. 스물다섯 살 김은 그리스의 무역회사에 취직시켜준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건너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무역회사 따위는 없었다. 그리스 정부에서 임금을 지원받는 한국인 사장은 월급 150만원 중 90만원을 숙박비로 거둬간다. 후임자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젊은 여자가 김에게 말한다. "방법이 없어요. 그냥, 시간을 허비하는 수밖에. 국가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에요."
식민통치와 독립투쟁, 쿠데타로 들어선 독재정권과 민주화투쟁, 좌우대립과 공무원 부정부패,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IMF(국제통화기금)에 손을 벌리기까지 그리스와 한국은 똑 닮았다. P는 '그곳엔 없고 그곳엔 있는' 것이 부럽고, 나중엔 서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가난하지만 버리지 않는 게 있었으니, 바로 인간에 대한 철학과 기본적 권리에 대한 보장이다."
관광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서, 몸으로 사람과 장소를 겪어보는 게 산책의 매력이라 할 것이다. 백가흠은 "이 책이 작가로서 무지하기만 했던 생활의 저편으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220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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