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 아니면 나가라" 난장판 된 장애인학교 설립 토론회
서울강서특수학교 토론회 찬반 격돌 파행…울음 터뜨린 장애인 학부모
장애인단체 대표 참석 문제로 시비…조희연 "9월5일 다시 열 것"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마련한 지역주민 토론회가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
주민들은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남연 서울장애인부모회 대표가 강서구 주민이 아니라며 토론회장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김 대표는 자리를 지키되 발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토론회를 진행하자"고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공진초 터를 비롯해 서초구 염곡동, 중랑구 등 3곳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서울에는 2002년 경운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특수학교가 세워지지 않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가 아니라 국립한방의료원이 들어서길 바란다.
가양동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이 태어난 곳으로 대한한의사협회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국립한방의료원 설립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에서 공진초 터가 조사대상 부지 가운데 적합도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반발은 더 거세졌다.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이미 한 곳 있다는 점도 반발 이유 중 하나다.
공진초 터 인근 탑산초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시작 전부터 정상적인 진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했다.
토론회장 인근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과 119구급대가 대기했다.
출입문 옆에는 손팻말과 현수막은 물론 물병도 반입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긴장감을 더했다. 교육청 직원들은 긴우산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도 막았다.
초등학교 교실 2개 규모 토론회장은 토론회 시작 예정시간인 오후 7시 30분 훨씬 전부터 200여명의 강서구 주민과 장애인 학생 부모들로 가득 찼다.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조 교육감이 인사말을 하고자 단상에 올랐을 때는 장애인 학생 부모들 쪽에서만 박수가 나왔다. 한방의료원 설립을 공약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인사할 때는 반대편에서만 박수가 터졌다.
조 교육감이 일어서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한 뒤 인사말은 앉아서 이어가겠다고 하자 한 주민이 "서서 하라"며 고성을 질렀다. 조 교육감은 선 채로 발언했다.
그는 "주민의 의견을 끝까지 듣겠다"면서 "국립한방의료원을 원하는 마음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아 "강서구 쪽에서 학교가 통폐합돼 다른 터가 마련되면 그곳에 한방의료원을 지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하지만 조 교육감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분리교육은 안 된다"고 말하자 단상 아래서는 "도덕 수업하러 왔느냐"는 거센 항의가 쏟아졌고, 조 교육감은 황급히 말을 마쳐야 했다.
이어 김성태 의원이 일어났을 때는 장애인 학생 부모들이 "인사말 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반대편에서는 박수와 함께 김 의원 이름을 연호했다.
이후 토론회는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강서구 주민이 아닌 사람은 토론회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진행이 멈췄다.
토론회장에 강서구 주민들만 있어야 한다는 이들이 단상 위의 조 교육감과 특수학교 설립 찬성 측 토론자들에게 삿대질하고 달려들려고 하면서 교육청 직원들과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상황도 벌어졌다.
거센 항의에도 교육청 측은 강서구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김남연 대표를 퇴장시킬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고, 주민들은 "그러면 토론을 할 수 없다"며 버텼다.
결국 토론회는 김 대표의 참석 문제로 1시간여 동안 공전하다 아무 소득 없이 끝났다. 잠시 자리를 피했던 조 교육감이 돌아와 오는 9월 5일 다시 토론회를 열기로 약속하면서 주민들은 모두 해산했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강서구 주민만 토론회에 참여하도록 해달라고 교육청에 줄곧 말해왔다"면서 "토론회를 요청한 지 10개월 만에 열면서 외부 사람을 토론자로 앉힌 것은 애초부터 토론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토론회가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다 결국 파행으로 치닫자 장애인 학부모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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