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시카고,'진로계획' 제시 학생만 고교졸업장…전국적 논란

입력 2017-07-06 08:07
美시카고,'진로계획' 제시 학생만 고교졸업장…전국적 논란

대입·취업·입대 등 계획 확인돼야…"저소득층 자녀, 고교졸업장마저 받기 어려워져"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미국 시카고 시가 공표한 이색적인 '고등학교 졸업 요건'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은 오는 2020년부터 고등학교 4년 교과 과정(한국 중3~고3)을 마치더라도 대입·취업·입대 등 졸업 후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면 졸업장을 받을 수 없도록 방침을 정해 최근 시 교육위원회의 승인을 얻었다.

미국 대도시 교육청이 '진로계획'을 '졸업 요건'으로 만든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시카고 교육청 산하 공립 고등학교 학생이 졸업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학 입학 허가서 또는 취업 증명서, 입영 통지서, 휴지기(Gap Year) 프로그램 등 사실 확인이 가능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5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이매뉴얼 시장은 이달 들어 워싱턴DC와 뉴욕 등 주요 도시 언론에 이같은 방침을 알리며 정책 홍보에 나섰으나 외려 "공립학교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제스추어"라는 반응을 사고 있다.

이매뉴얼 시장은 "시카고 고교생 41%가 아무 준비 없이 졸업한다"며 "시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알렉스 아코스타 미국 노동부 장관은 "연방 차원에서 업계에 견습생 제도 확대를 장려하는 등 10대 고용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미국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되는 나라"라면서 "제한된 선택을 졸업 요건화 하는 것은 염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뉴욕 시 교육감을 지낸 캐슬린 캐쉰은 "일하기 원해도 일자리가 없는 경우, 대학에 가고 싶어도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얻는 것 없이 고교 카운슬러들의 업무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시카고 공립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지원서만 내면 시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칼리지 중 한 곳의 입학을 보장받을 수 있어 특별한 효과도 없을 것"이라며 이미 많은 학생이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만 하고 실제 출석을 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캐런 루이스 시카고 교원노조위원장은 "극심한 재정난을 이유로 지난 한 해 1천 명의 교직원을 해고하고, 학교 문을 줄줄이 닫은 시카고 교육청이 학생들에게 졸업 후 계획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과 카운슬링을 지원할 수 있나"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자격이 있는 학생들에게 고교졸업장을 줘야 한다"며 "저소득층 자녀들이 고교졸업장마저 없다면 더 가난한 삶을 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일선 교사들과 카운슬러들은 "학생들이 고교 교과 과정을 잘 이수하고, 길거리 폭력 조직에 가담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이매뉴얼 시장의 이번 방침은 시카고 교육청장을 지낸 안 던컨 전 미국 교육부 장관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행정부 최장수 각료 기록을 세우고 2015년 12월 자리에서 물러난 던컨 전 장관은 시카고 교육사업체와 투자사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방침이 가뜩이나 낮은 시카고 공립 고등학교 졸업률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카고 고교생의 4년 내 졸업률은 74%로 미국 전체 평균 83%에 못 미치며, 4년제 대학 등록률은 40%로 전국 44%보다 낮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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