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면 창조활동이 발전할까…'서바이벌 연극'이 던지는 질문
상금 1천800만원 놓고 4개 극단 경쟁 방식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개막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편'은 이 문장에서 시작하는 연극이다.
'대한민국 최초 연극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연극은 참여극단 4곳이 벌이는 경쟁 그 자체가 작품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참여극단들은 최대 16분 내에서 '나의 창조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문장과 관련된 공연을 선보인다.
모든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의 투표가 시작된다. 총 9차례 공연에서 관객 투표 결과를 합산해 우승 극단에는 1천800만원의 진짜 상금이 주어진다.
연극은 TV의 오디션 쇼 형식을 그대로 빌려왔다. 화려한 조명 속 사회자로 분한 배우들이 등장해 쇼의 개막을 선언하면 한 팀 한 팀 공연이 시작된다. '프로듀스 101' 같은 TV 쇼에서 본공연에 앞서 준비 과정에서 있었던 뒷이야기들을 편집해 보여주듯이 참가 극단들의 공연 사이에는 이번 연극과 관련된 뒷이야기들이 극중극 형식으로 등장한다. 공연 중간에는 광고도 등장한다.
'신성한' 예술에 경쟁 방식을 도입한 것은 이번 공연을 기획한 극단 앤드씨어터를 이끄는 전윤환 연출의 아이디어였다.
전 연출은 "극단을 한 지 10년 됐는데 6년 정도는 모든 지원사업에서 떨어지면서 '왜 난 안되는 거지'라는 열등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되는 사람이 잘해서 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제도적 한계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2015년 연극동인 '혜화동 1번지'에서 '상업극'을 주제로 작업하기로 했는데 '상업극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시대에서 가장 상업적인 것은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 아닌가 싶었고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상업극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인 창조경제가 떠올랐고 국정기조가 창조경제인데 왜 내 창조활동은 경제활동에 도움이 안 될까 싶었어요. 그래서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는 상업극을 어떻게 해볼까 고민하다 경쟁을 시키자고 생각했죠."
서바이벌 공연에는 '불의전차'와 '신야','잣 프로젝트','907' 등 극단 4곳이 참여했다. 창단기간은 평균 4.2년,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30.3세, 모두 청년예술인으로 불리는 젊은 연극인로 구성된 극단들이다. 각 16분의 짧은 공연에서는 창조활동만으로는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청년예술인들의 고민과 현실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경쟁은 창조활동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경쟁의 규칙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선택을 받은 극단은 경제생활이 나아질 수 있을까, 1등이 되지 못한 창조활동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연극이 던지는 질문은 기획서 경쟁을 통해 지원대상을 정하는 각종 지원사업의 방식이 타당하냐는 물음으로도 이어진다.
'불의전차'의 변영진 연출은 "기획서로 평가되는 게 극도로 싫고 소수의 심사위원이 전체를 평가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상금 1천800만원이 필요해 이번 경쟁에 참여했다"면서도 "비록 떨어지더라도 16분이란 공연 시간이 주어지니까 짧게나마 최선을 다할 수 있고 1등을 못해도 덜 억울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907'의 설유진 연출은 "현재의 지원사업은 지원하는 공공기관에서 선호하는 작품이 있는 만큼 자유롭게 사유할 수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설 연출은 "서류와 기획서로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유망예술가 지원사업에서 떨어지면 유망예술가가 아닌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1천800만원을 차지할 경쟁의 승리자는 마지막 공연일인 16일에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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