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금융 문맹] "은행'일'보려고 버스타요"…소외된 고령층·장애인
중증장애인 은행 모바일 앱 접근성 55.8점에 불과해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강원도 강릉시에 사는 정모(72·여) 씨는 매달 20일이면 은행 일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고 은행에 가 자녀들이 보내주는 용돈을 찾아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고 생활비를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데 1시간도 넘게 걸려 은행 업무가 그야말로 '일'인 상황이다.
은행에서는 자녀가 사 준 스마트폰으로도 각종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언감생심이다.
얼마 전에 노인정에서 스마트폰으로 은행 거래하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겨우겨우 돈이 들어왔나 나갔나 확인하는 정도로만 쓰고 있다.
각종 이체를 하려니 뭘 그렇게 누르라고 하는 게 많은지 복잡하고 혹시라도 잘 못 눌러 엉뚱한 곳으로 돈이 나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전에는 동네에 은행이 있어 수시로 갈 수 있었지만 몇 년 전에는 항상 이용하던 은행 지점이 사라졌다.
그래도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옆 동네에 지점이 있어 이용했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없어졌다.
결국, 은행에 가려면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
정 씨는 "이웃집 할머니가 보이스 피싱인가 뭔가 당했다고 해서 불안해 은행 카드도 안 쓴다"며 "우리 같은 사람은 불안해서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데 은행이 계속 없어진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점포를 줄이는 대신 디지털 금융을 강화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이 바로 정씨와 같은 고령층 노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6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60대와 70대 이상의 인터넷뱅킹 이용자 비율은 각각 14.0%, 4.3%에 불과했다.
노인들은 지점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창구를 이용하다 보니 각종 수수료도 모바일이나 인터넷뱅킹보다 더 많이 물어야 한다.
노인들 외에 시각장애인도 디지털 금융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각종 인터넷 홈페이지나 앱에서 음성 서비스가 지원되고 말하는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도 나왔다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 없이 은행 거래를 하기에는 아직도 크게 불편하다.
지난 3월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충북대학교 모비즈랩에 의뢰해 나온 '국내 금융 및 전자정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은행 모바일 앱 접근성 점수는 평균 55.8점(100점 만점)에 불과해 중증장애인이 이용하기 매우 어려운 수준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인 4급인 김모(44·남)씨는 "인터넷보다는 폰뱅킹이 훨씬 편리해 주로 이용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지 않아 한계가 있다"며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대출도 받는다고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힘들게 은행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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