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창조경제' 지우기…경영보고서 대부분 삭제
LGD·삼성전자·현대차 등 혁신센터 활동 소개 제외·축소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국내 주요 재벌그룹 계열사들이 최근 연례 경영보고서를 잇따라 발간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상징적인 정책으로 여겨졌던 '창조경제'를 대부분 지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이 협업해 분야별 산업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정책이지만 기업들로서는 이에 대한 새 정부의 방침을 지켜보면서 최대한 몸을 낮추는 분위기임을 감지케 한다는 지적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5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이 지난달말과 이달초 잇따라 '2017 지속가능 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지난해 경영성과와 중장기 사업계획을 소개했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보고서에서는 일제히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한 지역별 산업역량 특화'와 관련한 활동 경과와 향후 계획을 내놨으나 올해 보고서에서는 대부분 삭제했다.
바이오·뷰티 산업을 특화 육성하는 충북창조혁신지원센터의 지원 기업인 LG디스플레이는 지난 3일 보고서를 펴내면서 '창조경제' 문구를 모두 없앴다.
지난해 보고서에서는 "정부 주도하에 추진 중인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충북센터의 4대 창조 테마 중 LG IP공유 플랫폼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활동을 소개했었다.
또 협력사 지원 활동의 하나로 금융지원 프로그램 등을 언급하면서도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경북과 대구에서 각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원하는 삼성전자의 경우도 지난해 보고서에서는 '창조경제' 문구가 11차례 등장했으나 지난달 30일 펴낸 올해 보고서에서는 이를 모두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경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2014년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마협회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는 혐의를 주장하고 있어 이에 더욱 민감한 입장이다.
지난해 보고서에서 창업지원 활동, 지속성장 기반 강화 등과 관련해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창조경제펀드의 역할도 강조했던 현대차도 올해는 이를 대폭 줄였다.
작년 보고서에서 '창조경제' 문구가 6차례 등장했으나 올해는 수소전기차 보급 노력 등에서 3번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롯데그룹 계열사 가운데서는 롯데케미칼이 지난 7일 지속가능 경영보고서를 내놨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창조경제'라는 문구는 넣지 않았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도 지난해에 이어 이달 중순께 공식 발간할 지속가능 경영보고서에서 모두 '창조경제'를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민간기업들로서는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면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관련한 활동은 계속하더라도 굳이 이를 보고서에서 부각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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