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국가 세르비아 의회, 첫 여성·동성애자 총리 인준
브라나비치 총리 "최우선 과제는 EU가입과 서방·러시아 균형외교"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보수적인 발칸반도의 나라 세르비아에서도 역사상 첫 여성 동성애자 총리가 탄생했다.
세르비아 의회는 29일 아나 브르나비치(41) 총리 지명자에 대한 인준 표결을 진행, 찬성 157표, 반대 55표로 가결했다.
이로써 그는 동성애 혐오증이 만연한 발칸 지역의 첫 동성애자 총리이자 세르비아 최초의 여성 총리직을 수행하게 됐다.
지난 15일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에 의해 깜짝 임명된 브르나비치 총리는 당초 민족주의 성향의 강경파 의원들의 거센 반발로 인준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으나 의회 다수당인 부치치 대통령이 이끄는 세르비아혁신당(SNS)의 지지에 힘입어 무난히 표결을 통과했다.
국민 대다수가 보수적인 동방정교회 신자로 동성애 혐오증이 만연한 세르비아에서 첫 여성이자 동성애자 총리가 나온 것은 이정표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브르나비치 총리의 인준으로 세르비아는 룩셈부르크와 아일랜드에 이어 동성애자 총리를 둔 유럽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에서 유학한 마케팅 전문가인 브르나비치 총리는 미국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USAID) 직원, 재생에너지 회사 임원 등을 거쳐 작년 8월 부치치 총리 내각에서 행정장관으로 발탁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 4월 대선을 승리로 이끌며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를 옮긴 부치치 대통령은 최근 세르비아가 러시아와 관계를 부쩍 강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우려를 완화할 목적에서 브라나비치 총리를 자신의 후임으로 삼았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EU는 EU 가입을 원하는 세르비아에게 EU 가입을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로 과거 내전으로 상처를 준 주변국과의 화해와 더불어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브르나비치 총리는 의회 인준 표결을 앞두고 한 연설에서 "전임 부치치 정부를 충실히 계승할 것"이라며 "EU 가입과 함께 러시아, 중국,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말했다.
전임 정부처럼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의 균형 외교를 하겠다는 구상에 맞춰 새로 꾸려진 브르나비치 내각에는 알렉산다르 불린 국방장관 등 공공연한 친 러시아 각료들도 일부 포함됐다.
한편, 세르비아는 의원내각제 국가로 지금까지 대통령은 실권 없이 상징적 역할을 하는 데 그쳤으나 능력은 있으나 정치적 기반이 없는 브르나비치가 새 총리가 됨으로써 부치치 대통령에게로 권력 집중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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