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피란민 아들 文대통령, '삶의 연원' 장진호전투 기념비 참배

입력 2017-06-29 10:13
수정 2017-06-29 10:19
흥남피란민 아들 文대통령, '삶의 연원' 장진호전투 기념비 참배

장진호 전투로 중국군 12만명 남하 저지…흥남철수 가능케 해

참전용사에 허리 굽혀 인사…배지·사진 선물받고 "부디 오래 사시길"

기념비 옆 '겨울왕' 산사나무 식수…혹한전투 이겨낸 참전용사 상징

(워싱턴=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방미 첫 일정으로 잡은 것은 장진호 전투가 문 대통령의 가족 및 개인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본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다. 문 대통령의 아버지 고(故)문용형 씨는 흥남시청 농업과장까지 지냈다.

광복 후 북한이 공산화되고 남북이 분단되자 문 대통령의 아버지는 공산정권에 반감을 품게 됐고, 6·25 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오자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조국이 통일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북한 지역이 다시 공산화될 위기에 처하자 문 대통령의 부모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바로 흥남철수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흥남철수 당시 미군이 제공한 선박을 통해 약 9만1천명의 피란민이 흥남에서 남쪽으로 철수했다.

특히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 한 명의 피란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갑판과 화물칸에 있던 무기와 화물을 바다에 버리고 정원 60명인 배에 무려 300배에 가까운 1만4천명의 피란민을 태운 뒤 흥남부두를 출발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1만4천여명의 피란민 중에는 문 대통령의 부모도 타고 있었다.

1951년 12월23일 흥남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5일 거제항에 도착했고, 문 대통령은 2년 뒤 거제에서 태어났다.

훗날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으로 불린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장진호 전투'였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이 북측의 임시 수도인 강계 점령 작전을 수행하던 중 중국군 9병단(7개 사단 병력·12만명 규모)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2주 만에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전투를 일컫는다.

이 전투로 미 해병1사단은 약 5천명의 사상자를 냈다. 3명 중 1명이 전사하거나 부상한 것으로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됐다.

그러나 미 해병1사단이 2주간 12만명에 달하는 중국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덕에 흥남철수가 가능했다.

이들이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10만명에 달하는 피난민은 북한을 떠날 수 없었다. 물론, 문 대통령의 일생도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방미 첫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선택한 것은 자신과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심혈을 기울여 참전용사들 앞에서 읽을 연설문을 직접 수정했다고 한다. 연설문에서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 것은 과장없는 사실을 통해 문 대통령의 진심을 표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선 한층 직접적인 방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등병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미 해병대 중장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옴스테드 중장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 추진단체의 고문이기도 하다.

옴스테드 중장은 "3일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 길을 찾지 못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기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해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며 당시 처절했던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문 대통령에게 기념배지를 선물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은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강조하면서 흥남철수 당시 직접 촬영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사진을 선물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갑판에서 찍은 사진인데 갑판 밑 화물칸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고 한다"며 부모님께 들은 말을 전했다.

배지와 사진 등을 선물 받은 문 대통령은 "제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라며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이 이제 50분도 남지 않았다는데 부디 오래 사셔서 통일된 한국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한 후 문 대통령은 '숭고한 희생으로 맺어진 동맹.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띠가 매어진 화환을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 헌화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 등과 함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오른쪽에 산사나무 한 그루를 기념식수했다.

산사나무의 별명은 '겨울왕'(Winter King)으로 혹한을 이겨낸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의 용기를 상징한다.

이날 행사는 40분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문 대통령이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70분간 진행됐다.

한편, 문 대통령은 행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중 현지교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환영 플래카드를 든 교민 수십 명을 발견한 문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교민과 악수하고 사인 요청에 응했으며, '셀카' 촬영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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