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트랙 걷힌 곳엔…캐나다서 본 올림픽 시설 활용 방안

입력 2017-06-30 04:00
수정 2017-06-30 08:36
빙속 트랙 걷힌 곳엔…캐나다서 본 올림픽 시설 활용 방안

리치먼드 오벌, 설계부터 '올림픽 이후' 초점…종합 스포츠센터로 변모



(밴쿠버·리치먼드=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세계 규모의 스피드스케이팅 대회를 유치할 계획이 있다면 롱 트랙이 부활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선수들이 더 선호하는 캘거리가 있는데 두 곳의 빙상장을 운영할 필요가 없죠. 롱 트랙이 다시 깔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14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 인근 리치먼드의 올림픽 오벌에서 만난 리치먼드시의 기업 홍보·마케팅 디렉터 테드 타운센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오벌의 상황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인구 20만명 정도인 리치먼드는 애초 밴쿠버 올림픽 유치 당시엔 경기장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기존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뒤늦게 합류했다. 당시 리치먼드가 경기장 유치에 뛰어든 가장 큰 이유는 '실내 체육관' 수요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경기장 설계는 철저히 '올림픽 이후'에 초점이 맞춰졌다. 본연의 목적이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 아닌 지역의 종합 스포츠센터였던 것이다.

타운센드 디렉터는 "이런 이유로 오벌은 올림픽 경기에 필요한 공간보다 33% 더 크게 건설됐다. 사후 활용을 고려해 추가 공간을 둔 것"이라고 전했다.





올림픽 당시에는 '슬로우벌(slowval)'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기록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남자 10,000m의 이승훈(12분58초55)을 비롯해 3개의 올림픽 기록을 양산하는 등 큰 차질 없이 경기를 치렀다.

이후 롱 트랙은 자취를 감췄다. 이미 고지대에 기온이 더 낮아 신기록이 속출하는 캘거리 오벌이 자국내에 있는 만큼 롱 트랙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대신 리치먼드 오벌에는 엘리트 선수부터 동네 청소년까지 누구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3층짜리 대형 스포츠센터가 들어섰다.

공간은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촘촘하게 설계됐다. 경기장 공간이던 2층엔 아이스하키나 피겨스케이팅 등을 소화할 수 있는 링크, 60m·100m 트랙, 각종 코트가 고루 펼쳐졌다. 천장의 공조 시스템으로 각기 온도 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배구, 농구, 탁구, 배드민턴, 암벽등반, 실내 조정, 요가 등 다양한 종목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으며, 트랙 위 천정에는 그물이 설치돼 골프나 야구 연습까지 가능하다. 3층엔 피트니스 센터도 자리 잡았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도 2층 한쪽에선 시민들이 배드민턴·탁구 등을 즐기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선 캐나다 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출전한 캐나다 대표선수 중 38명이 이곳에서 훈련했다.

"이곳이 '커뮤니티 센터'냐고 물으시면, 그게 맞습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들도 충분히 훈련이 가능한 공간이죠."





큰 공간을 워낙 다양하게 활용하다 보니 한 주말 동안 월드컵 펜싱과 국제 규모의 체조대회, 캐나다 국내 스케이팅 대회가 동시에 열린 적도 있다고 타운센드 디렉터는 설명했다. 다음 달에는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경기가 열린다.

지역 사회의 활용도도 높다. 6천명의 회원이 꾸준히 이용하는데, 80% 이상이 리치먼드 시민이다. 연간 방문 인원은 90만명에 달한다.

리치먼드 오벌은 회원권 판매와 공간 대여, 각종 스폰서십 유치 등을 통해 올림픽 이후 연평균 200∼300만 캐나다 달러의 흑자를 낸다. 시도 비용을 지원하지만,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타운센드 디렉터는 "과거 올림픽 개최지에서 경기장을 짓고 실패한 사례가 너무 많아서, 저희는 경제적으로도 성공하고 지역에 이득이 되도록 하는 걸 목표로 했다"며 "올림픽 경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2순위' 였다"고 말했다.

경기장을 짓기 전 '사후 활용'에 대한 고민 없이 올림픽 경기 개최에만 집중하면 결국 '처치 곤란'해진다는 교훈을 철저히 반면교사 삼은 셈이다.



다른 밴쿠버 올림픽 경기장도 비교적 사후 활용이 잘 이뤄지고 있다.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린 '선더버드 스포츠센터'는 본연의 목적인 아이스하키 경기·훈련 외에 공연장으로도 이용된다. 보조 링크에조차 10만 달러의 '네이밍 스폰서'를 유치해 받아 관리 비용 등으로 사용한다.

썰매 경기장인 휘슬러 슬라이딩 센터는 일반인에도 개방해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메인 프레스센터는 대형 컨벤션센터로 재탄생해 각종 행사를 유치하고 있다.

존 펄롱 밴쿠버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굳이 실패 사례를 꼽자면 휘슬러의 스키점프대다. 캐나다에 스키점프가 크게 활성화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체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2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 중 리치먼드 오벌처럼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릴 강릉 경기장은 정선 알파인 센터와 함께 아직도 뚜렷한 사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대표 훈련 시설로 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나 아직 운영 주체나 방식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올 초엔 물류단지 조성 전문업체가 냉동창고로 활용하겠다는 제안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인 강릉 경기장에는 1천264억원이 투입됐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으로 지난 12∼23일 캐나다에서 진행된 'KPF 디플로마 [글로벌 스포츠 이슈 - 평창동계올림픽]'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작성됐습니다.)

song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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