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어업유산] ⑧ "횃불에 불붙여라. 멸치가 뛴다" 가거도 멸치잡이
횃불 들고 소리 지르며 몽둥이로 배를 치며 멸치 유인
가거도 멸치잡이, 특별하게 만든 건 노래…전승자 고령 '명맥 흔들려'
(신안=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그 바다 한가운데/ 삶이 그리운 사람들 모여 살았네/ 더러는 후박나무 숲 그늘 새/ 순금 빛 새 울음소리를 엮기도 하고/ 더러는 먼 바다에 나가/ 멸치잡이 노래로 한세상 시름을 한 몸 되어/ 눈부신 바다의 아이를 낳았네. (곽재구 시인의 '가거도 편지' 중에서)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4시간을 넘게 달려야 닿을 수 있는 한반도 서남쪽 끝 가거도 앞바다에는 멸치잡이 배들로 불야성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챗배에 올라탄 어민들이 부르는 멸치잡이 노래는 밤바다의 정적을 깨웠다.
멸치는 불을 쫓는 주광성이 있고 어민들이 지르는 소리에 비례해 잘 잡혔다.
어민들은 횃불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몽둥이로 배를 치면서 멸치를 유인했다.
챗배 어업은 그물을 펼친 후 멸치를 그 위로 이동시켜 잡는 방식으로 남해, 제주도 근해 멸치잡이에 사용된 전통 어법이다.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노를 사용하는 챗배의 쓰임새는 줄었지만 지금도 여름철이면 소형 어선 1∼2척씩 바다에 뜰 때가 있다고 가거도 주민은 전했다.
고급 기술이 필요한 조업이 아님에도 가거도 멸치잡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노래다.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는 거문도 뱃노래와 함께 멸치잡이 노래로는 가장 유명하다. 1988년 전남도 무형문화재 22호로 지정됐다.
놋소리(노 젓는 소리), 멸몰소리(멸치 모는 소리), 술비소리(멸치를 퍼 올릴 때 부르는 소리), 풍장소리(만선에 감사하는 소리) 등 조업 단계별로 노래가 구성됐다.
앞소리로 "어기야"라고 외치면 "어기야 에야디야 올라가세"라고 뒷소리가 따르는 방식이다.
멸치를 몰 때는 "자 물 썰 때가 됐다. 횃불에 불붙여라. 멸치가 뛴다"는 선창에 후렴구가 뒤따라온다.
어업요는 바다 위 조업 중 부르는 작업요와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뱃노래로 나뉘는데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에는 두 유형이 혼재한다.
독특한 가창 형태와 시나위조 가락은 남도 민요사 연구에도 가치가 있다.
멸치잡이 노래는 2005년과 2012년 등 자치단체 주도로 재연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있다.
예능 보유자 3명 가운데 2명은 숨졌으며 팔순을 앞둔 김창대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 보존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다.
15명 안팎 보존회 회원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가 생업 등을 이유로 예전 같은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멸치잡이 노래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가거도 폐기물 종합처리장 건물에는 전수관도 만들었지만, 관리가 부실해 보인다.
멸치잡이 노래 전수자 박재원(53)씨는 "70∼80대 어르신들이 아니라면 노래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있는 시설이라도 정비해서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게 해야 젊은이들에게 노래를 전승하는 기회도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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