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바나나 난다고? "국내에서 자라는 건 파초"

입력 2017-06-27 14:37
수정 2017-06-27 15:58
폭염 속 바나나 난다고? "국내에서 자라는 건 파초"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27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의 한 주택 정원에 찾아가 보니 커다란 잎이 주렁주렁 달려 얼핏 보기에 바나나 같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잎사귀 사이에는 꽃이 달린 길쭉한 줄기가 비쭉 나왔는데, 줄기 위쪽을 자세히 보니 바나나 모양의 작은 열매 여러 개가 송이를 이뤄 달려 있었다.





이 집에 사는 이운선씨는 3년 전쯤 지인에게서 바나나라고 듣고 이 식물을 얻어와서 심었는데, 최근에 이게 바나나가 아니라 파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잘 키워서 직접 기른 바나나를 먹어보려고 비료도 주고 열심히 길렀는데 계속 올해처럼 바나나 모양의 작은 열매와 꽃만 자랐다"며 "최근에서야 이게 파초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최근 때 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대구와 광주 등에서 바나나처럼 보이는 열매가 열려 화제가 됐다. 이상 고온으로 우리나라도 아열대화돼 바나나가 열렸다며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노지에서 바나나가 자라기 힘들다"며 이는 바나나가 아닌 파초(芭蕉)라고 말한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 따르면 바나나와 파초는 파초과(科) 파초속(屬)의 다년생 초본으로, 분류학상 같은 종류에 속하지만 차이점은 분명한 다른 종의 식물이다.

바나나는 열대성 식물로 아직 국내에서는 노지에서 자라기 어렵고, 파초는 온대성으로 내한성이 강해 서유럽·미국·캐나다 등 온대지역에서 널리 자란다.

바나나의 경우 영상 4∼5도에서 언 피해가 발생하지만, 파초는 추위에 비교적 강해서 영하 10∼12도까지도 견딘다.





바나나와 파초는 구별법만 확실히 안다면 외관상으로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파초는 바나나와 비슷한 꽃과 열매가 달리지만, 바나나에 비해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다. 열매가 열렸다 하더라도 5∼10㎝ 크기로 작고 씨가 많으며, 맛도 떫어서 식용으로는 부적합하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국내에서는 파초에 열매가 맺혀 종자가 발생하기 어렵지만 생육환경은 적합하다. 수분이 이뤄지는 열대지역에서는 까만색의 단단한 종자가 발생한다.

파초는 잎 뒷면이 옅은 녹색을 띠며, 바나나는 잎 뒷면에 하얀 가루가 발생한다.

꽃포(苞·꽃대의 밑 또는 꽃 꼭지의 밑에 있는 비늘 모양의 잎)의 색깔로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파초의 포는 노란색이지만 바나나의 포는 적자색이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아직 우리나라는 생육 온도가 낮아 식용 바나나가 노지에서 자라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우스를 이용한 바나나 재배는 제주도 등에서 일부 이뤄지고 있다. 2015년산 제주도 과일 생산현황을 보면 2개 농가가 1㏊에서 바나나 32t을 재배한 것으로 파악됐다.

바나나 시설 재배는 1980년대에 제주도를 중심으로 급증해 1990년에 국내 재배 면적이 440.2㏊, 생산량이 2만1천770t에 달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에 따른 수입 자유화로 농가 대부분이 폐원했다.

성기철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관은 "현재 국내 노지에서 바나나 모양으로 자라는 것은 우리가 자주 먹는 바나나가 아니라 파초라고 보면 된다"라며 "대구, 광주 등에서 자라난 것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사진으로 확인해본 결과 파초로 보인다"고 말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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