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학교전담 경찰관 사건' 1년…상처 딛고 변화 모색

입력 2017-06-26 08:05
'부산 학교전담 경찰관 사건' 1년…상처 딛고 변화 모색

전담경찰관이 여고생과 성관계…조직적 은폐로 신뢰 위기

경찰, 여경 배치·전문가 비중 상향 등 제도 개선책 마련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학교전담경찰관(SPO)들이 여고생과 성관계를 하고, 경찰 내부에서 이런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부산 SPO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지났다.

교육 당국과 협력해 학생을 선도하고,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임무를 맡은 SPO가 이런 비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조직 내부에서는 SPO 업무 자체가 경찰이 할 일이 아니라는 회의론까지 나왔다.

홍역을 치른 경찰은 SPO 역할 재정립과 전문성 강화, 윤리교육 확대, 교육 당국과 협력 강화 등 내용을 담은 쇄신안을 마련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1천명이 넘는 SPO가 경찰과 학교 간 다리 역할을 하며 전국 각지에서뛰고 있다.



◇ 학생 보호하는 경찰관이 어떻게…조직 '휘청'

작년 6월 24일, '경찰인권센터'를 운영하는 장신중 전 총경이 센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부산지역 2개 경찰서 소속 SPO 2명이 담당 여고생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한 사실이 문제가 되자 해당 경찰서에서 몰래 의원면직 처리하고 사건을 덮었다'는 폭로였다.

논란이 확산하자 부산지방경찰청이 자체 진상조사를 벌인 데 이어 경찰청 본청 차원에서 특별조사단을 꾸려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부터 해당 경찰서까지 해당 사건 보고라인 전체를 상대로 조사와 수사에 착수했다.

조사결과 문제가 된 SPO들은 여고생들과 관계에서 강제성이나 대가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상담을 맡은 SPO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거나 상대 여고생이 연인관계로 착각하게 해 성관계했다는 판단이 나왔다.

소속 경찰서와 부산경찰청, 본청에 이르는 지휘라인도 사안이 공론화하기 전부터 비위를 보고받는 등 알고 있었지만, 은폐 또는 묵인하거나 사실관계 확인을 게을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일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내는 등 조직이 크게 휘청거렸다. 이후 해당 SPO 2명은 최고 수준 징계인 파면 처분됐고, 소속 경찰서장을 비롯한 지휘라인 관계자들이 대거 징계를 받았다.



◇ 개선책 마련…SPO 역할 조정, 전문성·인성교육 강화

논란이 불거지자 경찰청은 교육 당국과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SPO 제도 전반의 개선책을 마련했다.

SPO를 학교폭력 대응과 범죄 예방이라는 경찰 본연 역할에 집중시키고 교육 당국과 협업을 강화하며, SPO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후 SPO의 활동은 학교폭력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전통적 경찰 영역에 집중됐고, 학생 상담은 피해 사실을 확인하는 '면담' 수준으로 한정됐다. 학교 부적응, 심리 불안 등 폭력과 무관한 상담은 전문기관에 맡겼다.

학생 면담이 부적절한 관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면담 원칙도 엄격히 규정했다. 면담 장소는 교내를 원칙으로 하되, 교외 면담이 필요하면 Wee(위)센터 등 공공 상담장소를 이용하고 학교 측에 이유를 통보하도록 했다.

여학생 면담은 원칙적으로 여경이 맡도록 했다. 인력 부족으로 여학교나 남녀공학을 남성 SPO가 맡는 경우 여경을 부(副) 담당자로 지정해 여학생 면담 등에 반드시 동석하도록 했다.

작년 8월에는 여성가족부와 함께 전국 SPO를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했고, 올 2월과 5∼6월에도 전문강사를 초빙한 양성평등 교육을 마련하는 등 SPO의 인성교육도 강화했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근무 중인 SPO는 1천97명이다. 작년 6월과 비교해 여경 비율은 32.4%에서 42.4%로 증가했고, 86.3%가 학교폭력 관련 직무교육을 이수했다. 91.4%는 청소년 상담 등 전문 자격증 취득자다.

경찰은 아동·청소년·교육·상담·심리 분야 전공자를 SPO로 경력 채용하는 비중도 확대했다. 현재 전국에 관련 분야 전공자 214명이 특채돼 근무 중이다. 경찰은 전공자 출신 SPO를 내년까지 244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 현장서 묵묵히 일하는 SPO들 '속앓이'도

부산 SPO 사건이 일부 경찰관의 개인적 일탈이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일선에서 근무하는 SPO들은 해당 사건 이후 적잖은 속앓이를 했다.

한 SPO는 "사건이 불거지고 한동안 학교에 가면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우리까지 한 묶음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 민망할 때가 많았다"며 "지금은 그런 시선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다만 가능한 한 여학교에는 여경을 배치하는 등 SPO 성별에 따라 업무를 구분하고, 종전에 내부 비판이 많았던 '과도한 홍보활동'을 자제하는 등 여러 개선책이 현장에 정착됐다고 SPO들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처지가 어려운 학생을 돕는 데 발 벗고 나서거나 비행청소년 예방에 성과를 내는 등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SPO들이 많다.

'2016 전국 베스트 SPO'에 선정된 전남 목포서 박창도 경위는 2012년부터 SPO로 활동하면서 청소년 95명을 복지센터 등과 연계해 생활비를 지원받도록 돕고, 청소년 46명이 가입한 폭력서클을 적발해 해산하는 성과를 냈다.

학령기가 됐음에도 입학하지 않거나 장기 결석하는 학생의 소재를 파악할 때도 SPO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사권이 없는 교사와 달리 경찰은 주변 탐문, 통신수사, 출입국 조회 등 권한이 있어 대부분 신속히 소재를 확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교육 당국의 영역까지 경찰이 담당하는 것은 인력 낭비라며 SPO를 없애고 일선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나온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학교를 그만둔 '학교 밖 청소년', 집을 나온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는 공약을 낸 만큼 교육 당국,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과 협력할 SPO의 역할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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