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산 표본'…불가리아의 남이 장군 후손에 현지 주목
유력 매체, '북한계 불가리아인' 카멘 남 소피아대 교수 사연 소개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아버지는 북한 지식인, 어머니는 불가리아 간호사. 비인간적인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유복자 처지로 자란 아들은 불가리아 최고 국립대의 교수가 되고, 인생의 황혼기에 '명예 한국인'이 됐다.
불가리아 최대 인터넷 매체 베스티(Vesti)는 최근 카멘 남(60) 불가리아 소피아대학 교수(지리학)의 기구하면서도 역사적인 인생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남 교수는 1950년대 후반 요양과 교육 목적을 겸해 불가리아에 파견된 북한 유학생 남승범(사망)과 현지 간호사 예카테리나(89) 사이에서 1957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 교수가 2세 때인 1959년 귀국명령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가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수로 일하게 된다.
사실상 강제 이별을 당한 후 예카테리나는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평양 주재 불가리아대사관 비서 자리를 얻어 남편과 눈물의 상봉을 했지만 세 가족의 재결합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남승범은 아내가 외국인이라는 등의 이유로 박해와 견제를 받아 대학에서 쫓겨났다.
남편의 미래를 위해 귀국을 결심한 예카테리나는 모스크바를 경유해 간신히 북한을 탈출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남 교수는 불가리아 외가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귀국한 예카테리나는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홀로 남 교수를 길렀다.
남승범과 불가리아의 모자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서신과 전화 등 모든 연락이 끊겼다.
남승범은 이후 북한에서 재혼해 1남 2녀를 뒀고, 1986년 숨졌다.
냉전이 빚은 비극의 표본이라 할 남 교수 가족의 사연은 그가 지난해 경기도의 초청으로 방한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당시 남 교수는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이복 여동생을 공개 상봉했다.
남 교수는 조선 세조 때 무신 남이 장군(1441∼68)의 19대 손이라는 인연도 작년 방한 때 화제가 됐다.
이달초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열린 불가리아·한국 포럼에 참석한 현지 기자가 남 교수의 사연을 상세히 소개하며, 현지에서도 그의 극적인 인생이 조명을 받게 됐다.
25일 현재 베스티 웹사이트에서 남 교수 기사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서 800회 가량 공유됐다.
기사에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 59세가 돼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묘한 감정일까"(이용자 Zia), "슬픈 이야기다. 그러나 삶은 죽음이나 이별보다 강하다. 후손은 선조들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기 때문"(이용자 Маринчо) 등의 댓글이 달렸다.
베스티는 이번 기사에서 남 교수를 냉전의 비극을 생생히 드러낸 산 '증거'로 표현하면서 "그의 가족사는 정치적 격변의 산물이지만, 결국 정치를 극복해 나갔다"고 기술했다.
tr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