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블라인드 채용제, 공감할 만한 실행방안 마련돼야
(서울=연합뉴스)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제'가 전면 시행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법제화 전까지 민간 쪽에 강제할 수는 없지만 "공무원과 공공부문은 정부 결정만으로 가능하다"며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공공부문부터 학력이나 외모, 출신지, 스펙 등을 따지지 않고 오직 실력과 인성만 평가해 채용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력을 갖추고도 학벌이나 스펙이 달려서 사회 첫 출발부터 공정하게 겨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은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공약이다. 대선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의 청년 일자리 공약 중 하나가 '스펙 없는 이력서'다. 문 대통령은 채용과정에서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고 공정한 심사가 이뤄져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도 "명문대 출신이나 일반대 출신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나 똑같은 조건과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와 인사혁신처 등은 이달 안에 블라인드 채용 실천방안을 마련해 하반기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채용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안이 나와봐야겠지만 인사지원서에서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학력, 출신지,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을 삭제하고 면접 과정에서도 이런 질문은 배제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민간 대기업에도 권유하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나타낸 만큼 블라인드 채용제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부문으로도 확산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의도대로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을 통해 공정사회를 향해 진일보하기를 기대한다.
구직난을 겪는 청년들은 부모의 배경 같이 실력과 관계없는 요소로 쉽게 취업한 사례를 접하면서 더 큰 박탈감과 분노를 느낀다. 그런 점에서 채용과정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인 실행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원자에 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기준으로 '실력'을 평가하고 선발할 것이냐는 반론이 나온다. 학력이나 스펙은 지원자가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는데 이를 아예 참작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 아니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당국이 세부적인 상황까지 고려해 정교하게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탁상행정으로 그칠 수 있다.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도 유명무실해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하려면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실용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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