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정도준 표절 논란…작가, 공개토론서 "다른 작품" 부인
표절 의혹 제기한 김정환 작가 "제 작품 카피" 거듭 주장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복원된 숭례문 상량문 등을 쓴 유명 서예가 소헌 정도준의 표절 의혹을 따져 보는 공개토론회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정도준 작가의 최근 서울서예박물관 전시에 등장한 대표작 '태초로부터' '천지인' 시리즈가 각각 김정환 작가의 '묵음'과 장세훈 작가의 '천지인'을 베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면서 마련됐다.
그러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작가들과 평론가가 모두 불참하면서 토론회라기보다는 정도준 작가와 예술의전당 측이 반박 입장을 소개하는 '반쪽' 좌담에 그쳤다.
정도준 작가는 먼저 하늘과 땅, 사람의 사상을 담은 한글 모음을 구현한 '천지인' 시리즈가 2005년 전북비엔날레에 출품된 장세훈 작가의 동명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반박했다.
2003년 작업해 이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 전시회와 프랑스 쇼몽 전시회에서 공개한 '천지인' 도록 사진과 전시장 사진 등을 공개한 정도준 작가는 "오히려 시기적으로 장세훈 작가의 표절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정도준 작가는 종이가 거대한 검은 묵으로 덮인 가운데 미세한 여백을 보인 '태초로부터' 시리즈(2017)와 김정환 작가의 '묵음'(2016)의 표절 의혹에도 서로 다른 작품이라며 부인했다.
지난해 김정환 작가의 전시회를 방문한 뒤 유사한 작품을 내놓았다는 지적에는 자신은 1994년부터 한글 자음의 기호성을 연구해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 했으며 '태초로부터' 시리즈도 "서예를 극단화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은 화면에 흰색 미세한 균열이 있는 모습이 너무 흡사하게 보인다는 지적에도 "표면적인 유사성만 갖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또 빈틈을 내는 것은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전시를 기획한 예술의전당 큐레이터도 "두 작가는 출발점이 다르다"면서 "김정환 작가의 작품이 추상미술이라면 정도준 작가의 작품은 서예고, 후자는 서(書)와 문자의 기호성 양극단을 추구한 결과물"이라고 동조했다.
정도준 작가는 "(표절 의혹이) 너무나 악의적이고 인격 살인적인, 제가 60년 동안 활동한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 같아서 이 자리에 응했다"면서 "이와 관련한 무분별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행위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법적 조처를 할지 여부에는 "정말로 마지막에 이르면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거기까지 안 갔으면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주간지 인터뷰와 칼럼 등을 통해 표절 의혹을 제기했던 두 작가와 박영택 평론가는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세환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도준 작가가 2003년 해외 전시회에서 '천지인'을 공개했다는 이야기를 (주간지 인터뷰) 이후에 뒤늦게 들었다"면서 추가로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고 알렸다.
다만 김정환 작가는 정도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정환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많은 사람이 한 작가 작품처럼 인식하는 것은 미세하지만 공간을 어떤 식으로 쪼개고 붙이느냐의 아이디어, 창작 의도를 그대로 갖다 썼기 때문"이라면서 "제 작품 이미지를 큰 덩어리로 카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론회를 주선한 예술의전당을 향해서도 "정당한 토론이라면 안 나갈 이유가 굳이 없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중이라 평일 오후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데 지난주에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일정을 통보했다"고 비판했다.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