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육성한다더니…' 공공기관 외산제품 선호 논란
사업제안 요청 단계부터 국산 배제…외산 제품명 꼭 집어 적시하기도
발주기관 "사업 목적에 맞게 제안…중기 협동조합 일방적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새 정부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육성한다며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일부 공공기관 등은 아직 외산제품을 선호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업 공고를 할 때 중소기업은 입찰조차 하지 못하게 과도한 조건을 내거는 행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28일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12월 조달청을 통해 5호선 디지털전송설비 구매설치 사업의 사전 규격을 공개하면서 제안요청서(RFP)에 국산 전송장비 규격(MPLS-TP·중용량)이 아닌 외산 전송장비 규격(IP-MPLS·고용량)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MPLS-TP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규격대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표준화한 기술에 맞춰 국내개발제조사들이 공동으로 100억원 안팎의 비용을 투자해 개발한 방식이다.
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서울도시철도에서 처음에는 IP-MPLS만 제안요청서에 넣었다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에서 MPLS-TP 방식으로 변경하라고 권고하자 올해 2월 'IP-MPLS 또는 MPLS-TP 기술'이라고 수정했다"며 "하지만 세부 용량과 규격은 여전히 고스펙인 IP-MPLS 기준에 맞춘 채 수정하지 않아 MPLS-TP를 추가한 것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부의 전문가들조차 '도시철도 공사에 국가망에나 소요되는 용량을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을 내놨으나 반영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 김포도시철도, 한국도로공사 등의 광대역 통신망 구축사업에 MPLS-TP 방식이 채택된 전례가 있다.
조합은 올해 4월 서울도시철도가 발주한 '5호선 디지털 전송설비 구매설치 사업'이 의도적으로 국산을 배제하는 독소 조항을 포함하고, 중소기업 간 경쟁제도를 회피했다며 입찰을 취소해달라고 서울동부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5월 '법률 위반이나 권리 침해사항이 없다'며 기각했다 조합은 전했다.
조합은 이후 동부지법의 결정에 불복, 서울중앙지법에 항고한 상태지만 서울도시철도의 입찰은 지난달 마감됐고 IP-MPLS 방식을 채택한 업체가 선정됐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사업 공고 내용 등은 발주 부서가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알아서 결정한다"며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의견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 권고일 뿐이고 이 센터에서 의견을 낸 분들은 협동조합과 관계가 있어 객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중인 법적절차는 입찰이 이미 지난달 마감돼 의미가 없다"며 "협동조합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공공기관의 외산 선호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토로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충분하고 제품 경쟁력도 있지만, 수요 기관이 과다한 조건을 내걸어 (국내 제품을) 배제하려는 사례들이 종종 보고된다"며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공단, 국립대 등이 아예 외산 소프트웨어 제품명을 제안요청서에 넣어 입찰을 공고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외국계 대형 회사들이 수요 기관에 미리 영업해놓으면 정보가 늦고 영업력이 떨어지는 국내 중소회사들은 (외국계 회사를) 이기기 힘들다"며 "발주기관이 설계를 끝내놓고 외국 기업들이 알려준 스펙대로 발주한 뒤에 국내 중소기업이 항의하면 '사전에 (로비)했어야 한다'는 얘기를 팁이라고 해준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중소기업을 외면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신기술 시장에서 국내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힘들다"며 "국내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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