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사법시험" 마지막 시험…'굿바이, 고시촌의 꿈과 한숨'

입력 2017-06-21 11:33
수정 2017-06-21 14:05
"아듀 사법시험" 마지막 시험…'굿바이, 고시촌의 꿈과 한숨'

21∼24일 마지막 2차시험…'공정한 희망 사다리' 존폐 논란은 진행형

로스쿨 도입 따라 역사 속으로…"계층 이동 사다리 될 제도 논의해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고동욱 기자 =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공부를 잘해 주변에서 '수재' 소리 좀 듣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으레 "사법시험 봐서 판·검사 돼라"는 덕담을 건네곤 했다.

가난한 고학생이 골방에 틀어박혀 법전과 씨름한 끝에 법조인이 돼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 분투하는 이야기는 대중매체 속 이야기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오로지 시험 성적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사시는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의 등용문이자 '흙수저 희망 사다리' 역할의 대명사로 통했다.

이렇게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에서 만들어진 숱한 '성공 신화' 중 한 축을 담당했던 사법시험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한다.

21일 법무부에 따르면 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이 이날부터 24일까지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에서 치러진다.

사시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올해는 1차 시험이 치러지지 않았고, 법조인 양성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로 완전히 대체됨에 따라 사시는 이번이 마지막 무대가 된다.





◇ 70년 역사 사법시험…2만명 넘는 법조인 양성

사법시험의 시초는 1947∼1949년 3년간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이다. 이후 고등고시 사법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63년부터 '사법시험령' 제정과 함께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초기 사시는 합격 정원을 정하지 않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균 60점 이상을 얻으면 합격했다. 합격자 모두가 판·검사로 임용되는 사실상의 임용시험이었다.

1967년 합격자가 5명에 불과할 만큼 문이 좁았으나, 1970년 합격 정원제가 도입된 이후 매년 60∼80명으로 합격자가 늘어났고 1980년에는 300명에 이르렀다.

1995년 사법개혁의 하나로 선발 인원의 단계적 증원이 결정되면서 인원은 더 늘어났다. 1996년 500명의 합격자를 배출한 뒤 해마다 100명씩 인원을 늘려 2001년부터는 합격자 1천명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55년간 사법시험을 통해 양성된 법조인만 2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쿨 도입 전까지 국내에서 법조인이 되려면 반드시 사시를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전국 로스쿨이 문을 열면서 사시 선발 인원은 단계적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마지막 2∼3차 시험은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 중 2차 시험에 불합격한 이들만 대상으로 치러지며, 최종 선발 인원은 50여명이다.



◇ '오로지 실력' 숱한 성공신화 남겼으나 '장수생' 양성 비판도

사법시험은 성적으로만 합격자를 가린다. '줄 없고 빽 없는' 서민의 자녀도 오로지 실력만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종 '연고주의'가 뿌리 내린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과 성공 신화를 상징하는 제도 중 하나로 통했다.

지역·성별·학력의 차별 없이 오로지 필기시험 성적으로만 합격·불합격이 가려졌고, 권력자나 사회 지도층, 부유층 자녀들도 시험에 붙지 못하면 법조인이 될 수 없었다.

실력으로 등용문을 통과한 이들은 법질서를 통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사명감·자부심과 함께 부와 명예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문재인(사법연수원 12기) 현 대통령, 고(故) 노무현(7기) 전 대통령 등이 사시를 거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정부의 수반 자리까지 올라간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사법시험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합격 인원이 제한된 탓에 '장수생'이 늘어나고, 고시촌을 전전하며 청춘을 흘려보내는 '고시 낭인'을 쏟아낸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사시 준비생들이 모였던 서울 신림동 고시촌은 '청운의 꿈'이 자라는 곳이기도 했지만, 스트레스에 지친 고시생들을 겨냥한 변종 업소가 등장하고 때로는 생활고와 좌절감에 휩싸인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우울한 공간이기도 했다.

아울러 법조인이 부족해 국민의 법률서비스 접근성이 제한된다며 변호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싹트자, 1990년대부터 미국식 로스쿨 도입과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교수들과 법조인, 법조 문호 개방을 주장한 활동가 등이 주도적으로 논의를 이끌었다.

◇ 논쟁은 진행 중…"계층 사다리 될 새로운 제도 논의해야"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논의만 이어지던 로스쿨 도입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7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로스쿨법)'이 제정되면서 확정됐다.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문을 열었고, 국회는 변호사시험법을 제정해 사시 정원을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여 2017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이렇게 사법시험의 '마지막 해'가 왔지만, 존폐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시 폐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로스쿨이 부유층·권력층 자녀들이 입학하기 유리하다는 '음서제 논란' 등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평균 2천만원 안팎의 비싼 학비 때문에 경제력 없는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은 입학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3년 동안 다녀야 해서 각종 부대 비용까지 합하면 실제 감당할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입학정원 2천명이 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1천여명의 변호사가 배출됨에 따라 로스쿨은 이젠 법조인 양성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사법시험 부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해 이 흐름이 뒤집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사시 존치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만큼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로스쿨 제도와 공존할 수 있는 보완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로스쿨 입시·학사 관리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하며, 로스쿨 출신에게만 변호사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현행 구조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로스쿨이 '다양한 경험과 소양을 지닌 법조인 양성'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실제 다수 재학생을 보면 '학점 좋은' 젊은 대학 졸업생이거나 '구색 맞추기용' 일부 제한된 사회 취약계층, 주요 대학 법대 출신 등이라는 것이다.

당장 사시가 사라지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쫓긴 젊은이들이 각종 공무원시험으로 몰려 또 다른 '장수생'으로 변해버리는 세태를 보면 더욱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위철환 전 변협 회장은 "폐지가 결정됐지만,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는 희망을 준 사법시험의 의미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제 남은 과제는 사시를 대신해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할 새로운 제도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사법시험은 우리 사회에 '공정한 경쟁'을 담보하는 상징적인 제도였다"며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고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예비시험제도 등을 도입해 사시가 갖고 있던 가치를 계속해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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