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실 야근은 그대론데…특산물 사라진 자리 커피만 남아

입력 2017-06-21 06:12
수정 2017-06-21 06:31
예산실 야근은 그대론데…특산물 사라진 자리 커피만 남아

청탁금지법 때문에 그마저도 받지 않으려해 '격세지감'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거기 주무관 포함 몇 명이지? 커피 10잔이랑 쿠키 좀 주세요"

지난 20일 오후 기획재정부가 위치한 세종시 정부청사 4동 로비 커피숍.

한 남성과 여성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십여 잔을 주문하고서 캐리어에 옮겨 담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신분증 두 개를 겹쳐 목에 달고 있었다. 하나는 방문증이었고, 또 다른 신분증 줄에는 이들이 속한 부처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두 남녀는 4개들이 캐리어에 커피를 담고 빨대를 질서정연하게 꽂은 뒤 양손 가득 들고서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했다. 뒤따라가니 이들이 향한 곳은 기재부 3층 예산실이었다.

21일 관가에 따르면 올해도 어김없이 예산철이 돌아오면서 기획재정부 청사는 정부부처와 지자체 관계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지난해와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이들 방문객이 '빈손'인 경우가 많거나, 간혹 1층 로비에서 산 커피 몇 잔 정도만 손에 들려있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라 살림살이 규모와 항목을 결정하는 예산철이 되면 기재부는 간식거리가 풍족했다고 한다.

예산 설명을 하러 들른 각 부처나 지역자치단체 등에서 보내주는 지역특산물, 빵, 음료 등이 가득했다. 물론 당시에도 비싼 '선물'은 일절 없었고, 나름의 '정'을 표시하는 지역 먹거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작년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서 맞은 첫 예산철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청탁금지법이 자리를 잡으면서 예산실이나 예산실을 방문하는 이들 모두 오해받을만한 행동을 아예 하지 않으려다 보니 커피 정도만 눈에 띌 뿐이다. 그마저도 예산실 직원들은 가급적 받지 않으려고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재부 1층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사는 데 대기 시간이 무려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커피숍 매출이 작년의 3분의2 수준이라고 한다.

예산실은 지난달 30일까지 각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요구서를 접수하고서 현재 1차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후 8시만 되면 깜깜해지는 세종청사지만, 기재부가 있는 4동 건물은 자정이 지나도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이다.

3차까지 심의를 거치고 국민 의견 수렴 과정, 국무회의 등을 거쳐 9월 2일까지 내년 정부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올해는 예정에 없던 대선 때문에 각 후보의 공약 분석을 하느라, 지난달 문재인 정부 출범 뒤에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검토하느라 '야근 모드'의 시작은 더 빨랐다.

야근에 큰 힘이 됐던 각종 간식 구경도 쉽지 않다.

나라 곳간을 쥐락펴락하는 기재부 예산실이지만 정작 자체 경비는 많지 않다. 고된 야근을 하면서 야식을 챙겨 먹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예산실 한 관계자는 "사무실 냉장고가 텅텅 비어서 손님이 와도 음료 한 잔 내주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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