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잘 지켜다오" 손자에게 건넨 팔순 노병의 명령

입력 2017-06-20 16:22
"대한민국 잘 지켜다오" 손자에게 건넨 팔순 노병의 명령

6·25 앞두고 육군훈련소 수료 훈련병 손자 어깨에 태극기 부착

(논산=연합뉴스) 양영석 기자 =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노병은 전투복을 입은 늠름한 손자의 손을 꼭 잡고 "대한민국을 잘 지켜야 한다"고 부탁했다.

목발 없이 걷기 힘들고 허리를 펴기 불편하지만 이날 만큼은 절도 있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6·25 전쟁 참전용사 함현규(88)·이창우(86) 할아버지가 20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찾아 훈련소 교육을 무사히 마친 손자들을 만났다.

훈련소를 떠나기 전 군복에 태극기를 붙여주기 위해서다. 육군은 2015년부터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되는 신병들에게 가족들이 직접 오른쪽 어깨에 자그마한 태극기를 붙여주도록 하고 있다.



두 할아버지 역시 이날 훈련소를 떠나는 손자의 오른쪽 어깨에 태극기를 붙여줬다.

각이 잡힌 군복을 차려입은 손자 어깨에 태극기를 달아줄 때는 벅찬 마음에 손이 떨리기도 했다.

태극기를 붙이고 어깨를 '탁탁' 두 번 두드린 이창우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지긋이 손자 이하람 이병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 이병을 힘껏 안아주며 "대한민국을 잘 부탁한다"며 "부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성실히 군 생활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함현규 할아버지 역시 외손자 오진욱 이병욱 이병에게 태극기를 붙여주고서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했다.

함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경북 예천군청에 모였다가 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가서 해군상륙함(LST)을 타고 제주도로 이동해 신병훈련을 받았다.



크고 작은 전투에서 적군과 용감히 싸웠으며, 휴전 막바지인 1953년 7월 화천댐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다가 다치기도 했다.

이창우 할아버지는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대구에서 입대했다.

북진을 거듭하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남하한 국군은 강원도 정선과 영월에서 중공군의 4차 대공세를 막아내며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 전투에서 공로를 인정받은 이창우 할아버지는 화랑무공훈장을 2번이나 받았다. 그는 "후퇴하면서 식량이 떨어지고 중공군에 쫓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족과 나라만 생각하고 싸웠다고"고 당시를 떠올렸다.

두 분에게 태극기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곳곳에 태극기기 사라지고 인공기가 게양됐지만, 그 자리에 다시 태극기를 꽂기 위해선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두 사람에겐 태극기는 조국 그 자체였다.

이날 외손자에게 떨리는 손으로 태극기를 달아준 함현규 할아버지는 "목숨 걸고 싸워서 지킨 내 나라 대한민국을 손자가 군대에 가서 지킨다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이날 수료하는 모든 훈련병은 6·25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말고 조국수호의 숭고한 의무를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young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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