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바이오클러스터 샌디에이고의 교훈…"인재 확보"

입력 2017-06-20 11:44
세계최대 바이오클러스터 샌디에이고의 교훈…"인재 확보"

군수도시에서 대변신…"한국 바이오클러스터도 인재가 1순위"

(샌디에이고=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샌디에이고는 기초 연구부터 임상시험, 개발 이후 제품 상용화까지 모든 단계를 끌어낼 수 있는 '엔드 투 엔드'(end to end)가 가능한 곳입니다. 이 모든 건 훌륭한 인재가 있기 때문이죠."

빌 볼드 샌디에이고 경제협의회(EDC) 바이오 산업 담당 컨설턴트는 19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가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오클러스터 중 하나로 부상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샌디에이고는 1천100개 이상의 바이오 기업, 85개 임상시험대행기업(CRO), 80개 독립 연구소 또는 대학교 부속 연구소가 집적된 남부 캘리포니아의 바이오 산업 중심지다. 미국 내 보스턴, 샌프란시스코와 함께 주요 바이오클러스터로 손꼽힌다.

샌디에이고 EDC는 지역사회 경제 발전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기관이다. 샌디에이고 지역 내 기업에 해외 투자를 유치하거나 해외 진출을 위한 컨설팅 등을 담당하고 있다.

◇ 군수도시에서 바이오클러스터로의 대변신…"핵심은 인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도시로 명성을 날리던 샌디에이고는 종전과 함께 지역경제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샌디에이고가 다시 살아난 건 캘리포니아-샌디에이고 대학(UCSD)을 중심으로 우수한 인력이 몰려든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UCSD가 1985년 인재들의 지역 내 바이오 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커넥트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바이오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역 최초의 바이오 기업 하이브리텍이 1986년 다국적제약사 릴리에 인수·합병되고, 하이브리텍 경영자들이 벤처 투자자로 변신하는 등 선순환 효과가 나타난 것도 한몫했다.

볼드 컨설턴트는 "1960년대부터 기초 연구에 집중한 UCSD에 인재들이 몰려들었다"며 "단순한 연구뿐 아니라 우수한 연구기관, 자유롭게 공유·협력하는 건전한 문화가 형성되면서 바이오클러스터가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즉, 훌륭한 인재의 기초 연구가 우수한 연구기관에 의해 개발되고 이후 기업이 이를 제품으로 상용화하는 '엔드투엔드'가 가능한 환경이 현재의 바이오클러스터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로리 사바 샌디에이고 EDC 최고업무책임자(COO) 역시 "샌디에이고에는 대학이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면 기업이 준비된 인재를 고용하는 산학 협력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이런 문화가 중소기업과 지역을 발전시키는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바이오클러스터 조성을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인재를 양성하고 훌륭한 인재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연구기관을 조성하는 게 1순위라는 의미다.

볼드 컨설턴트는 "한국이 미국, 중국 등의 연구개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바이오클러스터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며 "우선 연구에 중점을 두고 충분한 인재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세계적인 솔크연구소 "눈 앞의 성과 아닌 기초 연구에 집중"

연구자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 중심', '기초 연구 중심'의 샌디에이고 문화는 실제 연구소에도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방문한 솔크연구소에서 기자와 동행한 이사벨 귀몬트 박사는 "솔크연구소에 있는 55개의 소규모 랩(lab)은 어떤 연구든 제한 없이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진행한다"며 "어떠한 규제도 없다"고 말했다.

솔크연구소는 소아마비(폴리오) 백신을 개발한 조너선 솔크 박사가 1960년에 설립한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현재 연구소장인 엘리자베스 블랙번을 포함해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47개국에서 온 1천100명의 연구자가 암과 알츠하이머, 유전병 등을 연구한다. 일부 유전자 활성을 조절해 쥐의 노화 과정을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로부터 지난해 최고의 과학적 성과 10가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솔크연구소에서는 확보한 훌륭한 인재들에게 최고의 자율성을 부여한다. 우선 연구과제는 연구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이뤄진다. 당장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상용화가 가능할지는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연구자의 과학적 호기심, 창의성 등이 가장 우선시된다. 기업의 투자보다는 정부의 지원금, 기부금 등으로 연구소를 운영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솔크연구소는 지난해 1억1천800만달러(한화 약 1천300억원)를 투자받았는데 이 중 44%가 정부지원금이다.

연구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솔크연구소의 정책은 건물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솔크연구소 연구실 사이에는 별도의 벽과 문이 없는데, 이는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실을 벗어나 다른 연구자와 협력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크리스티나 그리판티니 솔크연구소 매니저는 한국의 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해 조언해달라는 질문에 "(솔크연구소처럼) 연구자의 지적 자유를 촉진하고 호기심을 북돋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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