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수장' 후보에서 불명예 퇴진까지…혼돈의 6일
'법무부의 탈(脫)검찰화' 등 檢 개혁 예고했던 인사 낙마
음주운전 '셀프고백'에 '性인식 왜곡' 논란 등 터져
'몰래 혼인신고' 결정타…정권에 부담 안 주려 자진사퇴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지 6일째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장관 후보자로 내정될 때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검찰 개혁의 선봉에 설 적임자로 평가받았지만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의혹들이 터져 나오며 새 정부의 1호 '낙마' 장관 후보자라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청와대가 11일 안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할 때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공약인 '법무부의 탈(脫) 검찰화'에 본격적인 칼을 빼 든 것으로 해석했다.
'비(非) 검찰' 출신인 데다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냈을 정도로 인권 문제에 밝은 안 후보자가 법무부 수장으로서 순혈주의에 물든 검찰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인적 쇄신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같은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기대감은 채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13일부터 각종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안 후보자가 2014년에 광주일보에 쓴 칼럼에서 자신의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 단속되지 않은 음주 경험, 논문 중복게재 사실 등을 고백한 사실이 알려졌고 미국에서 태어난 두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도 불거졌다.
안 후보자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밝혔고 이런 흠결들만으로 장관직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추가로 불거진 의혹들은 안 후보자의 인선을 반대하는 세력에 본격적인 '흔들기'의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해 출간한 책 '남자란 무엇인가'에 쓴 '술자리에는 반드시 여성이 있어야 하며 없으면 장모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사내는 예비 강간범, 계집은 매춘부' 등의 표현은 안 후보자의 '성(性) 인식'이 왜곡됐다는 비판의 근거가 됐다.
인권 보호 의지를 확고히 밝힌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서는 부적절한 인식과 표현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다른 저서를 통해 '너는 아메리카라는 또 하나의 조국이 있다. 대한민국만이 너의 조국이라고 고집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것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과거 토론회에서 '징병제 하의 병영은 감옥과 유사하다'고 한 발언을 놓고 안보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진보 진영에서조차 '노동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서울의 명문 사립고에 재학 중이던 아들이 2014년 부적절한 이성 교제로 퇴학 위기에 처했다가 안 후보자의 탄원서 제출 후 징계 수위가 대폭 낮아졌다는 의혹마저 불거졌다.
결정타는 '몰래 혼인신고' 의혹이었다.
1975년, 교제하던 여성 몰래 도장을 위조해 혼인신고를 했다가 재판 끝에 혼인이 무효가 된 사실이 15일 알려졌고 이는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자질 논란으로 번졌다.
안 후보자는 이를 진화하려고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해명에 나섰다.
안 후보자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그 일은 전적인 저의 잘못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위였다"는 말과 함께 "그 후로 오늘까지 그때의 그릇된 행동을 반성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하고 국민의 여망인 검찰 개혁과 법무부의 탈검사화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해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미 여론은 그에게 법무부 장관의 역할을 할 기회를 주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운 뒤였다.
이런 상황에서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 '몰래 혼인신고' 의혹을 검증받았느냐를 놓고 안 후보자와 청와대의 주장마저 엇갈렸다.
안 후보자는 "2006년 인권위원장에 취임하기 전 사전검증에서 내부적으로 해명했고 일주일 정도 전에 (그와 관련한) 질의가 와서 나름대로 소명했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청와대 측은 안 후보자의 회견이 있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후보자 추천과 검증 과정에서 해당 의혹을 몰랐을뿐더러 인사발표 전 안 후보자와 만나고 통화했을 때도 관련 의혹을 묻지는 않았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은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이 담당하는 인사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확대됐다.
가뜩이나 각종 의혹이 불거질 때부터 야권이 조국 민정수석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부채질하던 터에 이러한 양측의 '엇박자'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일각에서는 조 민정수석이 대학 은사라는 이유로 안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게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기까지 했다.
여당에서도 더는 안 후보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해지면서 '불가' 의견을 물밑으로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안 후보자는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스스로 사퇴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가 '부적격자'라는 낙인을 찍은 상황에서 자신이 버틸수록 문 대통령의 공약인 검찰 개혁을 추진할 동력마저 사라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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