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6·15, 10·4로 돌아가자"…北에 '포괄적 해법' 카드
'북핵 완전폐기-평화체제 구축·북미정상화' 동시 논의 파격 제안
"추가도발 중단 땐 조건없이 대화"…'더 강한 당근' 제공 예고
북핵문제 남북관계 틀 속 해결 의지 표명…북한 호응이 관건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6·15 남북 정상회담 17주년을 계기로 북한을 향해 "역대 정권의 남북합의로 되돌아가자"고 공개 제의했다.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 등 기존 남북합의에 한반도 문제를 풀 해법이 있는 만큼 그동안 남·북한이 합의한 내용을 기초로 다시 대화와 협력을 모색해보자는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역대 정권에서 추진한 남북합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할 중요한 자산"이라며 "정부는 역대 정권의 남북 합의를 남북이 함께 되돌아가야 할 원칙으로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당면한 남북문제와 한반도문제 해결의 방법을 그간의 합의에서 찾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언급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대결과 긴장의 관계로 치달았던 남북관계를 다시 대화와 협상의 흐름으로 복원하겠다는 큰 틀의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남북 당국간에 이러한 합의들이 지켜졌더라면 정권의 부침에 따라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남북합의를 준수하고 법제화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반도의 최대 현안인 북핵문제를 기존 10·4 선언의 맥락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강조점이다.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일종의 '준거'가 되고 있는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돼야 한다는 약속이 두 선언에 명시돼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관련국들이 정상들이 종전선언을 추진해나가기로 약속한 점도 다시 거론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대북접근 기조와 북핵 해법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현실에 맞춰 "새롭게 담대한 구상과 의지"를 갖고 해결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북핵문제를 '남북관계'의 틀 속에서 풀어보겠다는 방향성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북핵문제를 관련국들이 참여하는 6자회담의 틀에 의탁하거나 북·미관계에 피동적으로 끌려가는게 아니라 우리 정부가 과거 남북간 합의의 틀 속에서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날 축사에서는 우리 정부가 북한을 향해 '더 강한 당근'을 제공할 것임을 예고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이 북한이 핵포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을 전제로 '포괄적 해법'을 제시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한 북핵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북미관계 관계 정상화를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협상을 시도하는 '패키지 딜'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지난 2000년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포괄적 대북해법을 담아 제시한 '페리 프로세스'와도 흡사한 느낌을 준다.
문 대통령은 축사에서 "저는 무릎을 마주하고,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기존의 남북간의 합의를 이행해나갈지 협의할 의사가 있다"며 "북한의 핵포기 결단은 남북간 합의의 이행의지를 보여주는 증표다. 이를 실천한다면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을 향해 대화의 '전제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기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철회하지 않고 '동결' 또는 '실험유예'하는 수준에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북한이 최소한 2012년 북·미간 2.29 합의를 이행해야 의미있는 남북대화와 6자회담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던 것과 비교하면 대화의 문턱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단순히 6·15 기념일을 맞아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는 수준을 넘어 새 정부의 대북 접근기조와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보인다.
특히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조명균 통일장관 후보자 등 새 정부 대북라인에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들을 전진배치한 것과 맞물려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문 대통령 스스로도 도발을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는 북한의 태도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의 존중과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핵과 미사일 고도화로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것은 바로 북한"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이 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태도로 나오느냐가 새 정부 출범 초기 남북관계의 '온도', 그리고 북핵 논의의 '방향'을 좌우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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