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지옥 같았던 런던 화재…"4층 불꽃이 10개층 삼켜"

입력 2017-06-14 23:17
한밤중 지옥 같았던 런던 화재…"4층 불꽃이 10개층 삼켜"

잠자던 고층 주민 연기 때문에 갇혀…'굴뚝 효과'에 화염 확산

계단 통로 한 곳만…"창가에서 비명 지르던 사람들 연기속에 사라져"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밖으로 빠져나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14일(현지시간) 0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런던 서부 래티머 로드의 24층짜리 아파트 '그렌펠 타워'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많은 주민이 잠든 시간이고 주거지역이라 화재 신고도 빨리 이뤄지지 못한 탓에 고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불이 난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복도를 가득 채운 연기에 갇힌 뒤였다.

이 아파트 7층에 사는 투라파트 일마(39)는 BBC 인터뷰에서 "17층에 사는 이웃이 전화를 걸어서 잠이 깼다. 빨리 탈출하라고 알려줬는데 문을 열어보니 이미 복도는 연기가 가득 찬 상태였다"고 말했다.



일마는 다섯 살 아들, 남편(44)과 함께 집에 갇힌 채 소방대원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짙은 연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999에 전화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소방대원이 그의 집 문을 부수고 대피시킬 때까지 5분 남짓 걸렸다.

일마는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불이 크게 났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4층에서 나오는 불꽃이 10개 층을 올라갔다"고 상황을 말했다.

화재를 목격한 라인 스터링(23)은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전등과 깃발을 흔들며 위치를 알리고 있었지만 곧 연기 속에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졌다"며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서 4명이 비명을 지리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연기와 불꽃 속에 모습이 사라졌다"고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모로코 출신의 모하메드 부야는 "18층에 친구 부부가 아이 셋과 함께 사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30년간 이 지역에 살았다는 그는 그렌펠 타워가 주변 다른 건물들처럼 저층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구조됐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렌펠 타워에는 화재 시 대피할 수 있는 계단 통로가 한 곳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야는 대피한 다른 주민들로부터 이웃들이 문을 두드리며 깨워주는 바람에 불이 난 사실을 알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화재경보가 제때 안 울리는 바람에 한밤중 고층아파트가 화마에 고스란히 전소하면서 인명피해도 커졌다.



이 건물 3층에 노모와 사는 사자드라는 청년은 밖에 있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소방대원들에게 어머니의 위치를 알려주고 구조를 요청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그곳에 있었다"면서 "충격을 심하게 받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산소호흡기를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알고 있던 이웃들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너무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

노동당 짐 피츠패트릭 의원은 "2009년 사우스워크에서도 비슷한 화재로 6명이 숨졌는데 21세기 런던에서 어떻게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당국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mino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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