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에 목매는 농민들…농촌마다 물찾기 전쟁
물 없어 논에다 밭작물 심는 농민…관정 파도 물 안나오는 경우 많아
경기도, 15개 시·군에 가뭄극복예산 40억 긴급 투입
(여주=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경기 여주시 대신면 당남리에서 고구마와 논농사를 병행하는 농민 이수재(76)씨는 13일 다랑논 두 곳에 고구마와 참깨를 심었다.
당연히 모내기를 해야 했지만 물을 구하지 못한 이 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른 다랑논 2곳에는 작은 관정에서 '소 오줌' 처럼 나오는 물을 오랫동안 받아서 겨우 모를 심었지만, 나머지 2곳은 모내기를 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논을 놀릴 수 없어 고구마순을 가져다 심고 이번에 처음으로 참깨 농사에도 도전했다.
이씨는 "예전에는 관정에서 나오는 물로 논에 물을 다 댔는데, 올해는 물이 조금 밖에 나오지 않아 논이 바짝 말랐다"면서 "관정이라도 여러 곳에 파야 하는데, 시에서 파주지도 않고 파도 물이 없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내 올 1∼6월 강수량과 저수율이 평년의 절반 수준에 그치면서 물을 구하지 못한 농가들이 관정개발에 목을 매고 있다.
물이 부족해 아직 모내기를 하지 못한 도내 논 면적은 386㏊에 달한다.
관정은 가장 빠르게 물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어서 경기도와 가뭄피해를 겪는 시·군들이 긴급 예산을 투입해 관정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는 1회 추경을 통해 가뭄극복예산 40억5천만원을 확보, 지난달 29일 안성, 화성, 여주, 이천 등 가뭄피해 15개 시·군에 내려보냈다.
이 돈에다 시·군 자체 예산을 보태 관정개발, 하상굴착 등 가뭄극복을 위한 용수확보에 쓰고 있지만, 워낙 물이 필요한 농가가 많아 농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13일 현재 도내에서는 총 182개 관정을 개발 중이다.
여주시는 19개 관정 개발을 마쳐 7개 관정에서 목마른 논에 물을 공급하고 있고, 나머지 12개 관정에서는 모터를 돌리기 위한 전기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관정개발을 위해서는 공사발주를 통한 업체선정, 관정개발, 전기공사, 물공급에 이르기까지 3주가량 시간이 걸려 당장 물이 급한 농가의 애를 태우고 있다.
여주시가 최대한 신속하게 업체를 선정하고 한국전력에 농사용 전기 공급을 최우선으로 해달라는 공문까지 보냈지만, 물 공급을 위한 시간 단축에는 한계가 있다.
저수지와 하천이 말라붙으면서 지하수도 점차 고갈돼 관정을 파더라도 물이 제대로 나오는 경우가 점차 희박해 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여주시 관계자는 "예전에는 관정을 파면 물을 찾는 성공률이 높았는데, 요즘에는 관정이 워낙 많다보니 관정을 몇군데 더 파야 물을 찾을 수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농가에 물을 공급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고 말했다.
비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관정만이 가뭄을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다 보니 관정을 둘러싸고 농민들 사이에 감정이 상하는 일도 벌어진다.
육군55사단이 13일 제독차로 물공급 대민지원을 한 안성시 금광면 사흥리의 한 논에서 만난 농민은 "관정에서 나온 물로 논에 물을 채운 주인에게 가서 같이 쓰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물이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 안된다고 했다"면서 "관정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끼리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관정을 직접 파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농민은 "논 하나에서 나오는 수익이 일 년에 150만원 정도인데 수백만원이 드는 관정을 어떻게 파느냐"고 되물었다.
깊이 100m까지 파는 관정은 비용이 관정개발과 전기공사 비용을 포함해 2천여만원이 들고, 10∼20m 가량 낮게 파는 관정은 150만∼200만원이 소요돼 영세농가에서는 개인 관정개발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도비와 시비 등 15억원을 투입해 관정개발에 나선 안성시의 농업정책과 관계자는 "비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할수 있는 것은 관정개발"이라면서 "가뭄피해를 본 많은 농민이 서로 먼저 관정을 파달라고는 하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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