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철 숨 막혀요"…미세먼지에 농민 무방비 노출

입력 2017-06-14 08:00
"영농철 숨 막혀요"…미세먼지에 농민 무방비 노출

"황사 대책만 있을 뿐 미세먼지 대책·관리기관 없어"

(춘천=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강원 춘천시 외곽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하는 박모(59)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농사일을 하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종일 밭에서 관리기를 사용하거나 씨앗을 심으면 목이 컬컬하고, 숨이 막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쓰면 일부 효과가 있지만 숨쉬기가 힘들어 이를 착용하고 일하는 이웃 주민은 거의 없다.

들녘에서 농사일하는 사람이 대부분 고령인 데다 일손이 부족한 현실에서 미세먼지 걱정을 하다가 일을 할 수 있는 적기를 놓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미세먼지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농번기에 실내에서만 있을 처지가 아니다"며 "지역 보건소나 행정기관에서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 어떻게 하라는 안내가 없다"고 설명했다.

농번기와 미세먼지가 심한 시기와 겹치면서 야외 활동이 많은 농업인이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전국 시·군의 농촌 현장에서 일하는 농업경영인들을 대상으로 들어본 의견도 비슷했다.



경북의 김 모 씨는 "미세먼지로 인해 야외 활동을 삼가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으나 농촌의 작업은 대부분 야외 활동이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호흡을 깊게 들이마셔야 하니 피해가 더욱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의 임 모 씨는 "야외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농업 여건상 미세먼지로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자, 노약자, 어린이를 중심으로 건강상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며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축사에 미세먼지가 들어가 가축도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전남에서 농사를 짓는 전 모 씨도 "어린이와 노약자가 질병에 취약한 데 이중 노약자가 많은 농촌 지역은 미세먼지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며 "농촌에도 미세먼지 농도를 쉽게 안내하는 전광판을 설치하고, 예방을 위한 행동요령을 고지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미세먼지는 농작물 피해와 농촌 관광산업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강원의 변 모 씨는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질수록 비닐하우스에 쌓이는 양이 많아 햇빛 투과율을 약하게 하고, 식물 잎사귀에 붙어 광합성을 방해하는 등 농작물 피해도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충북의 이 모 씨는 "농업은 식량 생산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서 함양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이용되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국민이 외출을 삼가게 되면 농촌 체험이나 관광산업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농업인들에게 알려주는 대책이나 농정기관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농정기관은 황사에 따른 가축과 농장관리에 관해서만 관심을 두는 게 현실이다.

이들 기관은 미세먼지가 비닐하우스에 쌓이면 햇빛 투과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씻어내도록 하고, 중금속 성분의 미세먼지가 가축 사료에 묻지 않도록 덮어두라고 안내하지만, 농업인들이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강원도농업기술원은 "현재는 황사에 대비해 주로 가축과 농장 관리대책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농약을 살포하거나 탈곡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미세먼지 대책은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dm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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