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동구에도 젊은 층의 반란…반부패시위에 10-20대 압도적

입력 2017-06-13 16:59
러시아·동구에도 젊은 층의 반란…반부패시위에 10-20대 압도적

슬로바키아에선 고교생 2명이 전국적 반부패 시위 2차례나 주도

"나라 재산 착복으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 삶을 훔치지 말라" 요구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최근 영국의 총선거에서 젊은 층이 과거와 달리 대거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선거 결과가 당초 예상과 크게 다르게 나타난 것을 두고 '밀레니엄 세대의 반란'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러시아와 동부 유럽 나라들에서도 올해 들어 10~20대 청춘들의 정치적 반란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러시아 국경일인 '러시아의 날'을 맞아 축제가 열리고 있는 모스크바 중심가를 비롯해 187개 도시에서 모두 수만 명이 참여한 반부패시위엔 20대 대학생은 물론 18세 이하 10대 중고교생이 대거 참가했다고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들이 전했다.

그에 앞서 6일 슬로바키아에서 벌어진 반부패 집회는 고교생 2명이 주도했다. 카롤리나 파르스카와 다비드 스트라카라는 이름의 동갑내기는 현지 언론에 5천∼1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보도된 이 시위에 앞서 이미 지난 4월 더 큰 규모의 반부패시위도 조직했었다.

슬로바키아 영자지 '슬로박 스펙타토르'에 따르면 이들이 시위를 조직하겠다고 밝혔을 때 시민단체들은 용기를 가상해 하면서도 참가자를 규합하기 어려울 것이고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고 걱정이 컸으나, 두 10대는 "접근해온 정치인들을 거부"한 채 2차례 걸쳐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는 데 성공했다.



슬로바키아의 첫 반부패시위 직전엔 헝가리와 루마니아에서도 청년층이 대거 참가하는 반부패 집회가 열렸다. 슬로바키아 시위를 조직한 고등학생들은 루마니아 시위를 보고 자신들도 나서기로 했다고 포린 폴리시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폴란드, 체코에서도 청년들의 부패 척결 요구 시위가 열렸다.

러시아와 동구 청년들의 공통된 요구는 정·관·재계 고위층이 나라 재산을 착복해 젊은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 삶을 갉아먹지 말라는 것이다.

러시아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야권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41)가 12일 시위 참가를 호소하면서 "나는 변화를 원한다. 나는 현대 민주국가에서 살고 싶고, 우리가 내는 세금이 (특권층의) 요트와 궁전, 포도농장으로 변하는 대신 도로와 학교, 병원이 되는 것을 원한다"고 한 말이 이들의 요구를 대변한다.

러시아와 동구 청년들의 반부패시위의 또 하나 공통점은 집회 때 국기로 몸을 감싸는 등 자신들의 시위를 '애국적 시위'라고 표방하는 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 병합 등 대외 정책을 통해 '애국주의'를 고취함으로써 80%를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시위대의 '애국' 표방은 푸틴이 애국을 독점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러시아 시위대 속에서 국기를 몸에 두른 예카테리나(28)는 포린 폴리시와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2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며 "이 나라를 뜨거나 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에서 반부패시위라는 정치활동에 적극 참가하는 젊은 층은 이들 나라가 2004년∼2007년 사이에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때 아동기여서 EU의 가치를 접하며 성장한 세대다.

러시아는 EU 회원국이 아니고 러시아의 청년층은 17년 장기집권한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만 아는 '푸틴 세대'이다. 그러나 기성세대와 달리 옛 소련체제가 붕괴한 후 1990년대의 극심한 경제난과 불안정, 폭력에 대한 기억이 없이, 또 정부가 통제하는 텔레비전과 신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유튜브로 대표되는 각종 온라인 매체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 특징이 활발한 정치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러시아의 반부패시위에 대해 외신들이 주목하는 새로운 양상은 지난 3월 시위 때만 해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 의혹을 중심으로 메드베데프 총리를 주로 거론했지만, 6월 시위 때는 "푸틴은 러시아에서 떠나라" "푸틴은 도둑이다"등 직접 푸틴을 겨냥한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한 점이다.

러시아 정부도 반정부 시위에 어린 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젊은 층이 압도적으로 참가하는 현상에 긴장, 일선 학교와 가정 단위에서부터 학생들의 시위 참여 의지를 원천적으로 꺾기 위한 겁박, 선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1일 시위를 주도하거나 참여한 10∼20대 학생과 그 부모들이 당국으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다며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3월 시위 당일 모스크바에서만 어린이 70명이 불법 시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미성년자를 조사할 땐 청소년 담당 경찰관이 부모나 보호자에 공식 소환장을 보내야 하는 절차를 어기고 직접 어린이들을 조사했다. 뿐만 아니라 담당 경찰관이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경찰 당국이 행정처분을 강요하거나 어린 자녀를 위험한 곳에 가도록 방치했다는 이유로 그 부모들에 대해 자녀 양육 책임 방기죄로 행정처분을 하는 사례들이 여러 건 확인됐다.

대학생들도 집회 신청서를 냈거나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 조치 등의 경고를 받았으며, 정보기관인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정리하게 될 것"이라고 학교 당국이 위협한 사례들도 있다.

많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선 학생들 정규 수업 대신 야권 지도자 나발니를 러시아를 혼란과 불안에 빠뜨리려는 '과격세력'이나 반러시아 '이념 전쟁' 분자로 규정한 기록영화 시청이나 지방정부 당국자들의 강연 청취를 강제하거나 권장했다고 HRW는 지적했다.

러시아 의회에선 허가받지 않은 집회시위에 아동의 참가를 금지하는 입법 움직임도 있다고 HRW는 덧붙였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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