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런 가뭄, 60년 만에 처음…목축일 물도 없어"
가뭄에 식수난 가중된 전남 진도군 외병도…급수선 보름 만에 도착하자 환호
물 부족해 빗물 끓여 먹고, 빨랫감 쌓아놓고 "비가 언제 내렸는지 감감"
(진도=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이런 가뭄은 이 섬에 시집온 60년 만에 처음이랑께."
13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항에서 뱃길로 1시간여 거리인 조도면 외병도의 밭에서 메마른 땅에 주저앉아 호미질하던 김연단(80·여)씨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김씨가 내리친 호미 날이 스치는 땅에서는 풀풀 흙먼지만 날리고 촉촉한 속살을 드러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외병도에는 김씨의 밭처럼 가뭄이 이어져 밭작물을 심지 못한 땅이 수두룩했다.
그나마 고추와 콩을 심은 땅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 목을 축이지 못해 시든 작물들이 힘겹게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허드렛물로 쓰던 마을 우물 두 곳도 이미 바닥을 거의 드러낸 지 오래고, 그나마 고인 물도 염분이 강하고 오염돼 작물에 뿌릴 수조차 없었다.
김씨가 제풀에 지쳐 무심한 하늘을 올라다 볼 찰라 멀리서 급수선이 도착했다는 기적이 울렸다.
진도군 조도면의 각 섬을 오가며 매일 부족한 식수를 공급하는 급수선이 보름 만에 외병도를 다시 찾아오자 김씨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해 수도꼭지를 먼저 틀었다.
보름여 간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던 수도꼭지에서 급수선이 산꼭대기 물탱크에 공급한 물이 시원하게 쏟아졌다.
"워메 이제야 물이 나오네"라고 탄성을 지른 김씨는 그동안 물이 부족해 하지 못한 빨랫감을 방안에서 한 아름 꺼내 빨래할 채비를 했다.
서울 사는 아들에게서 "물 없어서 어떻게 사시느냐"는 안부 전화를 받은 이심단(96) 할머니도 급수선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빗물을 받아놓은 항아리와 물통 중 비어있는 통에 물부터 받았다.
이 할머니는 "물이 부족해 마을주민 대부분이 빗물을 받아 끓여 먹는다"며 "생수가 있긴 하지만 그나마도 귀해 약수 먹듯 가끔 마신다"고 말했다.
16가구 19명 주민이 거주하는 외병도의 유일한 교회를 지키는 강태복(72) 목사는 설거지할 물이 아까워 그릇 대신 사용하는 일회용품 등을 정리하며 "급수선이 물이 대줘도 오늘 밤에는 모두 끊긴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집집마다 2∼3개씩 가지고 있는 대형 물탱크에 물을 채우다 보면 급수선이 공급한 30t의 물이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물을 저장해놓은 주민들도 아껴 쓰고 아껴 써도 이 물로 고작 3일 정도밖에 버티지 못한다.
다시 보름 뒤 급수선이 올 때까지 마을주민들은 빗물을 받아 버텨야 하지만 언제 비가 내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올해 가뭄은 심각하다.
진도군 조도면에만 이렇게 가뭄으로 식수난이 가중된 섬이 22곳에 달한다.
급수선은 매일 1곳 섬에 물을 공급하다 최근 가뭄으로 하루 평균 3∼4곳씩 급수를 요청하는 섬마을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1일 2회 운항 횟수를 늘렸다.
진도군도 도서 지역 주민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등 식수난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급수선 선장 장경한(46)씨는 "섬마을별로 가뭄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통상 20일에 한 번씩 급수를 요청하던 마을이 최근 15일에 한 번씩 물 부족을 호소하는 등 식수난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에 따르면 전남에서만 신안 72곳, 진도 45곳, 완도 54곳 등 모두 265곳 12만6천여명의 주민이 가뭄 탓에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전남 지역 강수량은 154㎜로 전년 대비 27.5%에 그치고 있다.
일부 섬에서는 장기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식수난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격일제 급수를 검토하는 곳도 생겨났다.
이날 진도의 한 섬마을에서는 "오랜 기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니, 물을 아껴달라"는 목이 잠긴 이장의 방송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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