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인생플랜] ① 자전거와 함께 '가보지 않은 길' 도전
최광철 전 원주시 부시장 "실패 두려워 시도하지 않으면 더 불행"
명퇴 후 아내와 자전거로 유럽 횡단 이어 동북아·뉴질랜드 대장정
[※ 편집자 주 : 은퇴 후 '인생 이모작'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인생 설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평생 월급쟁이를 하다가 인생 2막을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인생 이모작 성공 사례를 접하면서도 막상 도움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예비노년층이나 은퇴를 앞두고 새 삶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성공 스토리를 매주 연재합니다.]
(원주=연합뉴스) 배연호 기자 = "삶이 그러하듯이 일명 제2 인생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요. 긍정적 마음과 도전정신으로 개척해야 하는 길입니다."
최광철(62) 전 강원 원주시 부시장.
그는 지금 '바이크 보헤미안'(Bike Bohemian)으로 불린다.
'가보지 않은 길' 제2 인생을 자전거로 힘차게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와 첫 만남은 질투심이었다.
행자부 6급 공무원이던 2004년 봄 한강 변을 걷다가 산악자전거를 탄 청년을 목격했다.
"멋지네!"라는 아내의 감탄사에 자전거 라이딩 장비 일체를 샀다.
두 세트였다.
"저도 멋진 남자임을 보여주고 싶었죠. 처음에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고, 결국 춘천에서 땅끝마을 해남까지 일주했어요. 물론 아내도 함께했습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이었다.
퇴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한창인데 왜 떠나야만 하는가 하는 분노에서 우울, 불안, 초조 등 말 그대로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어요."
그러나 피할 수도 없었다.
그는 명예퇴임을 보름 앞두고 2014년 5월 펴낸 자전적 수필집 '수상한 부시장' 마지막 페이지에 '자전거로 유럽을 횡단하겠다'라는 문장을 넣었다.
책에는 '희망과 도전'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당시 마음 한구석에는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일단 떠나자'라는 현실 도피 측면도 있었다.
2014년 7월 자전거를 유럽행 비행기에 실었다.
아내와 함께 2014년 7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유럽 5개국을 자전거로 횡단했다.
하루 평균 50㎞, 총 3천500㎞를 달렸다.
비바람과 추위가 몰아치고, 사고 위험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고난의 여정이었다.
"다시는 가지 말자고 다짐했을 정도였어요. 아내에게 다음 여행은 크루즈에서 지중해 석양을 보고 와인잔을 들자고 약속까지 했잖아요. 물론 공약(空約)이 됐죠."
3개월 고난의 여정을 책으로 펴냈다.
'수상한 여행'이다.
책이 나오자 여행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년, 퇴직 준비자, 후배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갔지만, 뭔가 부족했다.
심장 한구석이 고난의 여정을 갈망했다.
최 씨 부부는 2015년 8월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비행기 화물칸에는 자전거 2대가 있었다.
두 번째 도전 동북아 대장정의 서막이었다.
"중국에 간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어요. 너무 위험하다고요. 그럴수록 가보지 않은 길을 정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어요. 그래서 주저 없이 짐을 꾸렸습니다."
한중일 동북아 대장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2015년 8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3개월간 4천840㎞를 달렸다.
거친 황하를 따라 한 달간 달리고, 후지산 자락을 가로 질렀다.
두 번째 도전에는 의미도 부여했다.
'화해와 배려'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중일 삼국이 과거 아픔을 화해로 풀고, 배려로 미래를 열어가자는 의미였어요. 조금 거창했지만, 여정에서 만난 한중일 국민에게 이런 의미를 어느 정도 전달했다고 자부합니다."
두 번째 여정은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명예퇴임을 앞두고 펴낸 자전적 수필집 '수상한 부시장'은 어떻게 보면 뼈저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라기보다는 누구나 말로는 할 수 있는 막연한 이상이었죠.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여정에서 그때 제가 쓴 내용이 맞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어요."
그는 자전적 수필집에 '희망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도전은 아름다운 고행이고 살아있다는 징표다. 가슴 뛰는 희망은 젊은이다'라고 썼다.
제1 인생의 흔적은 유럽 5개국 3천500㎞와 동북아 4천840㎞를 달린 끝에 완전히 지워졌다.
"잘나갔다는 착각, 조직사회 권위의식, 체면, 허례 등 모든 것을 버려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버려야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고, 비워야 난관을 뚫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그는 세 번째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을 위한 세 번째 도전이라기보다는 다른 퇴직자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획한 여정이었다.
여정 동행자를 전국에 공개 모집했다.
동행 조건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제2의 삶을 위해 '희망과 도전' 계기를 찾는 사람을 제시했다.
특히 부부가 함께하기를 희망했다.
"동행자가 '괜히 왔다'라고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죠.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것이 더 불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함께 가보자'라고 자신 있게 권했어요."
생면부지 부부 두 쌍과 남성 두 명이 모였다.
뉴질랜드 도전팀 '달려라 청춘'은 이렇게 탄생했다.
달려라 청춘은 2017년 1월 3일부터 2월 18일까지 47일간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오클랜드까지 2천㎞를 자전거로 주파했다.
"팀 명칭은 '청춘'이었지만, 팀원 모두 60세 이상이었어요. 동행자 중 한 부부가 부상으로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과 도전 그리고 배려와 소통을 배운 아름답고 의미 있는 동행이었습니다."
그는 요즘 뉴질랜드 여행기를 집필 중이다.
강연도 계속한다.
올해만 한국 원자력연구원, 원주 청소년 수련관, 강원도 인재개발원,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 충남·전남 공무원교육원 등에서 '자전거 보헤미안의 삶'을 이야기했다.
"거칠고 험난한 자전거 여행은 고난과 실패에서 인생을 배우는 것처럼 퇴직 후 제2 인생을 개척하는 담금질과 같아요. 저는 담금질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바이크 보헤미안'으로 불리기 전에는 '수상한 부시장'으로 통했다.
자전적 수필집 제목이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학력으로 9급·7급 공무원 공채에 모두 합격하고 옛 행자부 재정정책팀장, 화천군 부군수, 강원도 문화관광 체육국장, 원주 부시장을 역임한 인생 여정이 일반인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자전적 수필집 제목은 2014년 초 개봉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따왔다.
욕쟁이 칠순 할머니가 스무 살 꽃처녀로 돌아가 제2 전성기를 즐긴다는 영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인생 야망의 진정한 시작은 60세부터라고 했다.
"조직 틀에서 벗어나야 벌거벗은 자신을 볼 수 있고, 본 모습을 인정해야 진정한 야망을 향해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데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길이 험할수록 성취감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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